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ug 01. 2016

우리가 과거의 친절을 기억할 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은지의 여행 가방은 서윤의 것보다 두 배는 더 컸다. 그날 아침, 몸무게가 40킬로그램도 안 되는 은지가 창백해진 얼굴로 초대형 캐리어를 끙끙대며 끌고 왔을 때, 서윤은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대체 뭘 갖고 온 거니?”
서윤은 작은 크로스백 하나에 등산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은지는 친구의 단출한 짐 꾸러미를 흘깃대며 새치름하게 말했다.
 “그럼 넌 뭘 갖고 온 건데?”
<김애란 ‘비행운’ 중 ‘호텔 니약 따’를 읽다가>


계획에 없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남자는 빼고 여자들끼리만 떠난 주말여행. 사과나무 열매같이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야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출발하는 날부터 비였다. 일기예보를 보니 우리가 여행하는 내내 비가 예보되고 있었다. 비가 좀 오면 어떠랴 떠난 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맘을 먹었다.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는 건 더 싫어한다. 휴가를 떠나도 그냥 호텔방이나 숙소에 머물러 책이나 읽는 걸 좋아하는 쪽이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까지 와서 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느냐고. 이런 사람도 있는 거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니 그럴 엄두는 내지 못한다. 그저 아이가 잘 때 짬짬이 볼 요량으로 소설책 한 권을 여행가방에 넣긴 했다.(그러나 결국 단 한 번도 펼치지 못했다) 아이와 나 단둘이 떠나는 짐이지만 작은 캐리어 하나가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당장 쓸 수 있는 기저귀나 물티슈, 아이의 물컵 그리고 간식 등을 넣은 ‘기저귀 가방’도 따라붙는다. 거기에 내 작은 가방까지. 아이를 둘러업고 캐리어를 끌고 양쪽 어깨에 가방을 하나씩 달고서 같이 여행에 떠나기로 한 언니의 차에 올라탔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싣는 순간부터 남편 없이 떠나는 여행의 고단함이 느껴졌지만 이미 결정한 거 어쨌든 ‘고고씽’을 외치며 출발했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에게는 ‘주토피아’를 틀어주고 운전하는 언니에게 간간이 꼬깔콘과 커피를 건네며 우리의 여행은 시작됐다. 일주일에 3일은 보는 언니지만 그간 또 못다 한 이야기가 어디서 그렇게 샘솟는지 우리의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은 조카들이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 요청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나름 꽤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숙박업소로 몇 해 전 막 오픈 한 시점에 와보고 나는 이번이 세 번째였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산속에 지은 곳이라 아이들에게도 좋다. 무엇보다 숙소에서 취사 행동을 일절 할 수 없어 술 먹고 난동 피우는 사람도 없고 매우 조용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이렇게 이곳에 대해 칭찬일색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곳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 직원들의 친절을 잊을 수 없다. 누구랄 것 없이 친절한 미소와 더불어 고객의 가방을 숙소 바로 앞까지 들어다 주는 배려. 그 모든 게 ‘오픈 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로 우리는 주룩주룩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로비에서 숙소까지 바래다줄 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기억으론 특히 그 카트를 운전하는 직원들의 상냥함과 투철한 직업의식이 남달랐던 것 같다. 이윽고 우리가 타고 갈 카트가 도착했고 나는 여전히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우산도 거의 쓴 채 만 채로 카트에 올라탔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우리 숙소에 도착했고 그곳은 우리가 묵을 방과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주차된 거여서 아이 셋에 트렁크 두 개, 꼬맹이의 세발자전거, 가방까지, 걸어갈 게 꿈이었지만 사실 짐은 직원이 당연히 들어다 주겠지, 란 생각에 별 걱정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은 차 앞에 캐리어를 내려주곤 다시 카트를 운전해 떠나버렸다. 나와 언니는 너무 황당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등을 멀뚱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왜 짐을 여기에, 비에 젖은 흙바닥에 내려놓고 그냥 가는 거지? 너무 바쁜 건가? 어쨌든 우리는 비를 피해 재빨리 캐리어를 방으로 옮겨야 했다.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있을 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남편의 힘이 절실히 필요해지는 순간이었다.


illusy by 곽명주


그러고 보니 체크인할 때 로비에서도 직원들의 태도가 어딘가 달랐다. 그때의 그 친절함은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무뚝뚝한 표정과 고객들의 불편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시선에서 어딘가 변했다는 걸 느낀 것이다. 고객 하나하나의 불편까지 모두 흡수해 버리겠다는 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배려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만 느낀 불편함이었는지에 대해 언니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그렇게 느꼈노라고 말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다시 카트를 탔을 때 카트 운전하는 직원에게 옆에 호텔은 다지었느냐고 물으니 작업이 중단되었다고 했다. 왜냐는 질문에 돈이 없어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들의 불친절의 원천이 ‘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을 때쯤 언니에게 투자가 끊어져 직원도 많이 줄고 그에 따른 남아 있는 직원들의 피로도가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우리가 추측한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그들도 사람이고 한 가정의 가장일 테고 꿈과 미래가 있는 청춘들일 테니, 월급과 불안한 직장 환경에 기분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불편함이 기분 좋게 숙소를 찾은 고객들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라는 건 어딘지 많이 씁쓸했다.


마지막 날 비는 어김없이 계속 내렸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해 밥 먹으러 한번 나간 것 빼고는 단 한 순간도 밖에 나가지 못했다. 낑낑대며 들고 갔던 아이의 세발자전거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다시 카트를 불렀다. 비는 제법 내렸다. 우리에겐 우산이 하나밖에 없었다. 미리 문밖에 서서 직원을 기다렸는데 출발했다는 카트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뭘까, 이상하게 생각한 언니가 입구 쪽으로 나가보니 이미 도착한 직원이 멀뚱멀뚱 카트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화가 났다. 전에는 숙소 문 앞에까지 와서 가방을 들어줬는데, 비까지 오는 오늘 같은 날 고객의 짐을 나눠 들어주지 않으면 이 곳의 서비스는 대체 어디까지 내려간 건가, 하고 말이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잘못 걸린) 직원에게 너무 실망스럽다고, 전에 이곳에 왔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따지듯 말했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직원은 할 말을 잃었고 나는 뒷좌석에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난 그들이 했던 과거의 친절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 좋은 감정을 기억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그렇다고 자초지종 모른 채 옛날에 이랬으니까 지금도 이래야 한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누군가의 불친절로 한 가족의 여행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이 오고 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그곳 직원들이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옷장 가득, 입을 게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