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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23. 2017

빌라에서 생긴 일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오빠의 숨에서는 삶은 고구마나 부드러운 고무 지우개처럼 연한 냄새가 났다.

오빠처럼 젊고 착하고 따뜻한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냄새였다. 
<이은희 ‘1004번의 파르티타’를 읽다가>



지난 주는 이상하게 긴 일주일이었다. 목요일쯤 됐나 생각했는데 화요일이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동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냥 쉬는 날 없는 일주일이라 그런지 일이 많아 그런지, 여하튼 시간 참 안 가는 한 주였다. 뭔가 손에 딱 잡히는 걸 한 것도 아닌데 몸은 축축 늘어졌다. 그렇다고 퇴근 후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 맡은 바 엄마의 직분을 다 하느라 하루하루는 더 고되고 길었다. 힘들다는 말 하고 싶지 않은데 입버릇처럼 아이고, 아이고가 흘러나왔다. 진짜 목요일에는 이번 주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어야지 하고 다짐까지 했다. 안 그래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거라고 하니 집에서 고구마나 먹으며 밀린 ‘도깨비’나 몰아봐야지 하고 야무진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나에겐 이번 주말 해결해야 할 미션 하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잃어버린 항아리를 찾아라’였다. 항아리의 주인은 바로 친정 엄마. 잃어버린 곳은 우리 빌라 건물 1층.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항아리 3개를 우리 집에 보냈다. 옥상 테라스에 갖다 놓으면 엄마가 봄에 간장과 된장을 담그겠다는 알찬 포부를 선포하시면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어쨌든 용달차를 불러 항아리 3개(크기도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쪼르르)를 우리 빌라 1층에 일단 내려놓았다. 마침 우리 집 옥상도 방수공사를 하고 있어 공사가 끝나면 올려다 놓을 생각이었다. 항아리를 누가 집어가겠어, 라고 생각한 나와 달리 엄마는 분명히 누가 집어갈지도 모르니 반드시 바로 집 안에 들여다 놔라, 라고 지시했지만 따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잃어버린 항아리를 찾아서

다음 날,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별생각 없이 계단 밑을 보았는데 항아리 3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2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큰 것과 작은 것. 그러니까 중간 크기의 항아리가 없어진 것. 나는 왜 그랬는지 몰라도(진짜 귀찮았겠지) 항아리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큰 항아리 안에 중간 항아리를 넣어놨을 거라고 생각했다. (믿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뚜껑을 열어 확인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그렇게 며칠이 지나 옥상 공사가 끝나고 친정엄마와 언니네 식구가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항아리부터 찾았다. 두 개 밖에 없는 항아리를 보며 중간 크기는 어디 갔냐 물었고 나는 큰 항아리 안에 없냐고 시치미 뚝 떼며 말했다. 엄마의 대답은 NO. 그때부터 흥분하기 시작한 엄마가 누군가 항아리를 집어간 게 분명하다며 당장 찾아오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덤덤한 척 한 건물에 사는 데 누가 일부러 가져갔겠냐고, 본인 건 줄 착각했겠지, 라며 찾아 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엄마를 진정시켰다. 속으로는 진짜 누가 가져갔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과 괜히 한 건물에서 오해를 사 싸움이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거나 이번 주말에는 반드시 항아리를 찾아 놓으라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워드 새 문서를 열어 놓고 ‘502호 항아리를 찾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대한 친절히, 항아리를 가져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썼다. 친정 엄마가 애타게 찾고 있다는 말과 함께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라는 안부도 빼먹지 않았다. 조금 창피해서 금요일 밤에 남편을 시켜 엘리베이터 앞에 붙이고 오라고 시켰다.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밥을 찾는 아이 때문에 정신없이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안면이 있는 302호 아주머니였다. 본인이 항아리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내 예상대로 누군가 버렸다고 생각했단다. 어쨌든 제 자리에 갖다 놨으니 또 누가 집어 가기 전에 얼른 가져가라고,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항아리에 대한 아주머니들의 남다른 애착을 새삼 실감하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항아리를 찾아서도 그렇지만 모르고 가져갔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혹여 오해를 사서 싸움이라도 날까 봐 ‘쫄아서’ 최대한 상냥하게 썼던 내 글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2달 전 누군가 우리 차 앞 유리에 꽂아 놓은 쪽지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를 망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 중 그 ‘의문의 쪽지’도 포함시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돼서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집에서 나가는데 아이를 뒷좌석 카시트에 앉히고 조수석에 막 앉았는데 앞 유리창에 쪽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아직 차에 타지 않은 남편에게 손짓으로 쪽지를 빼보라고 했다. 내용은 이랬다.


“A동 대표입니다. 차를 여기에 너무 자주 대시네요. B동에 대주시기 바랍니다. 010-1234-1234”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본인의 전화번호를 남긴 얼굴도 모르는 A동 대표였다. 갈겨쓴 글씨는 화가 잔뜩 났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우리 빌라는 두 동인데 구역이 정확히 나뉜 게 아니라 A동 구역, B동 구역을 나누기 애매하다. 쪽지에 자주 댔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선 가급적 A동 앞에 주차하지도 않았다. 차를 거기에 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를 내려야 하기 때문인데, 옆에 차가 주차돼 있으면 카시트에 있는 아이를 꺼낼 수 없기 때문에 문을 열 수 있는 위치에 주차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볼 생각도 없이 잔뜩 화가 난 말투로 쪽지를 남긴 그 사람 때문에 난 그날 하루를 망친 거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지? A동 대표는 나를 두고 자기밖에 생각 못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피차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이건 아니지 않은가? 당장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를 그 자리에 댈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쪽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접한 만큼 대접받는 게 당연

어떤 말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기가 생기게 한다. 오기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나는 그 쪽지를 보고 그 사람에게 진 것 같아 억울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이 억울함이 풀릴 것만 같았다. 친정엄마가 항아리를 찾아내라고 내게 엄명을 내렸을 때 이렇게 써서 붙이라고 지시했다.


“항아리 502호꺼니까 당장 갖다 놓으세요!”


나는 그때 주차장 쪽지가 떠올랐다. 내가 느낀 감정과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본인을 마치 도둑처럼 몰아가는 데 어떤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할 수 있을까? 저렇게 썼더라면 분명 모르는 척 항아리를 더 숨겼을지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도둑으로 모는가 하면 한 두 번 주차한 걸 상습범처럼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내가 받을 대접(?)도 정해지는 것이다. 경험으로 터득한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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