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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04. 2017

생활이 바탕인 소설은
배신하지 않는다

속히 다음 책을 번역 출판해 주었으면 하는 작가들의 책 

1. 어제의 신_니시카와 미와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단다,

잘 생각하는 게 좋아.”


단편소설집 ‘어제의 신’을 읽다가 며칠 전 이 부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보며 나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단 생각에 괜히 뿌듯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보통’ 상태입니다. 방금도 앉아 있었지요, 집 앞에. 그럼 괜찮은 겁니다. 저 상태가 저 사람의 보통인 거지요. 평소 앉아 있는 곳에 없다, 평소와 어조가 다르다, 안색이 다르다, 이런 것이 진단의 기준이 됩니다.’ 


단편 ‘개미의 행렬’이란 소설의 일부인데, 외진 어촌의 시골 의사가 새로 온 신입 의사에게 하는 말이다. 각자의 보통 상태,라는 말이 좋았다. 정말 그렇다. 누구나 보통의 상태를 넘어서면 이상한 거다. 보통 때보다 많이 웃으면, 보통 때보다 많이 일하면, 보통 때보다 많이 먹으면, 사람들은 저 사람 좀 이상한데?라고 하는 것이다. 니시사와 미와는 얼마 전 영화로 만들어진 ‘아주 긴 변명’을 책으로 먼저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읽자마자 왜 이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지? 싶었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영화 ‘유레루’를 이미 봤었다. 소설이 아니라 영화로 먼저 만났던 것. 작가는 자신이 직접 각본을 써서 영화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소설을 읽다 보면 장면 연출에 신경을 썼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읽고 있는데 눈 앞에 그려진다. 나는 뭔가 큰 사건이 벌어지면서 휘몰아치듯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보다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나열한 글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생활에 바탕을 둔 소설에서만 내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부엌 싱크대에는 그녀들의 눈앞에서 당신이 바지런히 치워준 접시가 물속에 잠기지도 못한 채 지층처럼 겹겹이 포개져 있고 말라버린 치즈와 쌀은 벌써 딱딱하게 굳었다.”


“작아진 아이 티셔츠나 남편의 낡은 속옷 자투리가 걸레로 쓰기에는 제격이다. 부드럽고 보풀이 일지 않는 데다 잘게 찢을 수도 있다. 표백제를 풀고 단숨에 철벅철벅 빤 것을 네모나게 잘라 모양을 잡은 뒤 아낌없이 실컷 쓰고 휙 버린다. “

부분적으로 보았을 땐 이런 디테일한 표현에 감동하지만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로 놓고 봤을 때도 그 완성도가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존경할만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어제의 신’ 중에서 특히 ‘벼룩의 애정’을 좋아한다. 전직 간호사였지만 결혼 후 ‘허세와 긍지를 혼동하는 저 남편의 고결한 생업과 바른 성품을 지키기 위해’ 살림하는 아내로 자리매김한 주인공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빵조각’을 찾는 이야기인데 다 읽고 난 뒤 뭔가 뭉클함이 기분 좋은 에너지로 남았다.



2. 내가 원하는 시간_파비오 볼로 


“어딘가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 이름이 있다면 그건 ‘우리’였다”


우선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출판사 관계자가 있으시다면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이탈리아 작가 ‘파비오 볼로’의 다음 책을 번역해 출판해주세요… 제발… 내가 처음 읽은 이 작가의 책은 전에도 후기를 쓴 적 있는 ‘아침의 첫 햇살’이다. 당시 남자 작가인 줄 모르고 어쩜 이렇게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남자 작가여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여자의 심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디테일한 심리 묘사나 생활 패턴, 감각 등을 잘 어우르고 있어 글이 지루할 틈이 없다. 부랴부랴 주문해서 읽은 그의 두 번째 책은 ‘내가 원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크게 주인공의 가족, 특히 부모와 친구 그리고 그의 연인에 관한 파트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늙어버린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어릴 적으로 거꾸로 회상하며 쓰는가 하면 헤어진 지 2년이 넘은 애인과 재회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되짚어간다. 한 번은 부모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 다음은 연인에 관한 이야기로 편집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이탈리아 작가의 책이지만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에 ‘아침의 첫 햇살’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탈리아 문화나 정서가 우리와 참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주인공의 일상이나 생활에 바탕을 둔 묘사들이 많았는데 그 묘사들이 내 삶과 참 닮아 있어 공감의 폭도 넓었다. 직업 특성상 인상적인 문구는 반드시 필사해 놓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무려 A4 19장이나 된다. 하나 재미있는 포인트는 주인공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인데,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는 부분도 꽤나 흥미로웠고 실제로 작업에 참고할만한 내용도 있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꼭 말해주고 싶은 건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주인공이 헤어진 여자와 (그러나 너무 다시 만나고 싶은) 재회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하지 말라는 거다. 나 또한 388페이지가 마지막인 이 소설의 387페이지까지 읽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가 388페이지를 읽고 ‘헐… ‘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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