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n 01. 2017

과감한 변화보다
잔잔한 변경을 원해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어느 날 남편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가구는 무조건 화이트 아니면 우드 톤으로 살 거야. 그런 줄 알라고.”


신혼 때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구입한 체리색 수납장을 못마땅해하던 그였다. 5년이 흐른 요즘 우리는 대대적으로 체리색 가구를 하나씩 교체하는 중이다. 색이 맘에 안 들뿐 상처도 별로 없는 가구라 지인한테 저렴한 가격에 식탁과 수납장을 팔기도 했다. 그 외 싸게 산 가구는 눈 질끈 감고 과감히 빌라 1층에 딱지를 붙여 내놓기도 했다. 남편은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톤으로 인테리어를 꾸미겠다며 식탁이며 조명 등을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회사 다니랴, 신혼 때만큼 인테리어에 애착이 없어진 나는 ‘그래,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자세로 손을 놓고 있었다.


근데 그렇게 하나 둘 바뀌어 가는 집 분위기를 보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차이지? 싶었던 나는 그게 컬러, 즉 톤의 차이란 걸 알았다. 그러니까 가구 하나의 색이 아닌 모든 가구, 집기 등의 톤이 일정하게 맞춰졌단 것이다. 바로 화이트와 우드로. 엔틱 느낌을 좋아했던 내가 고른 체리색 가구가 사라지면서 모던한 느낌의 가구를 들여놓으니 우리 집도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그런 인테리어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늘 인스타그램이 사건의 발단이다) 어떤 일부만 보고 괜찮다 느껴 그 물건 하나를 사면 인테리어에 별다른 효과를 낼 수 없다. 말 그대로 몽땅 바꿔야 하는 것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장편소설 ‘침대의 목적’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소설 속 문장:
미리 치수를 재고 침대를 배치할 장소도 정해놓았지만, 막상 배달 온 침대를 보니 왠지 안정감이 없었다. 가구를 놓을 장소란 치수만으로 단순 명쾌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다나베 세이코 ‘침대의 목적’ 중에서>



보통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일단 가구를 놓을 공간의 치수와 가구의 치수를 잰다. 원하는 공간에 일단 맞아야 하니까. 화자도 새로 들여올 침대의 치수와 공간을 생각해 놨지만 막상 도착한 침대와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이 글로 어떤 상품을 파는 카피를 쓰면 좋을까? 공간의 치수를 재는 게 우선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분위기, 다른 가구와의 조화를 우선 생각해야 된다는 뜻으로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가구 파는 카피를 쓰되 너무 튀지 않는 가구, 지금 당신의 집에 당장 갖다 놓아도 어울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 내용이면 적당할 것 같다.


카피:
가구 놓을 장소란 치수만으로
명쾌해지는 과제가 아닙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가장 잘 어울리는,
원래 있었던 것 같은 침대, OOO입니다.


저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과감하게 확 바꾸는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보다 잔잔하게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침대도 그렇다. 일단 침대 하나만 바꾸는 거니까 무엇보다 이 집과 잘 어울리는 게 관건일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소소한 변화를 필요로 해서 인테리어를 바꾸는 사람들에 맞는 카피로 썼다.


가구가 너무 맘에 들어서 덜컥 샀지만 어딘가 붕 떠버린 느낌을 줬던 경우, 한 번쯤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살려 볼 때 지금 내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을 사는 게 어떻게 보면 인테리어를 바꿀 때 가장 급선무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것저것 새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우선하는 건 지금 집과 조화로울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거였다.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는 거다. 이 물건이 우리 집에 놓였을 때 얼마큼 잘 어울릴 수 있는가를. 예로 든 글은 그런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카피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