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y 24. 2017

부정하는 문장으로 물건 팔기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최근 읽은 장편소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는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됐다. 왜 제목에 끌렸을까? 당연히 나도 노후자금이 없으니까. 특히 요즘처럼 당장도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노후자금을 모아 놓는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처음 접한 가키야 미우의 소설은 그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는 듯 술술 잘 읽혀 장편이지만 빠른 시간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워낙 다이내믹한 소설보다 잔잔한, 내 옆집 얘기 같은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제목에서처럼 노후자금이 없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일본의 매우 평범한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모시고 사는 부모의 노령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노 부모의 실종을 숨기려 다른 노인을 돈으로 매수해 집에 데려다 놓고 공무원의 감시를 피하는 장면에선 씁쓸하기도 했다.


주인공 아츠코는 1남 1녀를 둔 중년층 여자로 어느 날 잘 다니던 회사에서 재계약을 거부당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실직했으며 큰 딸의 분에 맞지 않는 성대한 결혼식으로 재정 상태가 매우 심각해진다. 게다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례까지 치르게 되는 바람에 노후자금으로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상당 부분 써버리게 되는데… 매달 시어머니의 요양원 비용으로 9만 엔을 보내는 것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안 좋은 일은 왜 몰아서 오는지. 아츠코의 일상을 보며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상황이 나에게도 언제든,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결혼을 했고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언제까지 다닐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남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녀석의 학비와 결혼식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건 단순한 기우일까?


오늘 하려는 카피 이야기가 노후자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례품에 관한 카피인데, 소설에 아츠코의 시아버지 장례식에 온 분들께 드릴 답례품을 고민하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연인지 최근 29CM의 앱에 있는 메뉴 중 ‘선물 가이드’에서 ‘답례품’을 다루면서 연관 지어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없는 풍습이지만 일본에서는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답례품을 주는 모양이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행사에서 답례품을 받아 본 경험을 보면 이 답례품이라는 게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되기 십상이다.


소설 속 문장:
“그러게요. 집 안 구석에 처박아두었다가 바자회행이 되겠죠 뭐.”
(중략)
“이런 쓸데없는 풍습은 왜 있는 건지. 물건 고르는 것도 일이고 주소를 몰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상대 쪽에서도 그다지 좋아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요.”
<가키야 미우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중에서>


집 안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바자회행이 되기 쉽다는 건 쓸모없는 물건이란 뜻이다. 이건 답례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으로 카피에 적용한다면 반대의 의미로 써보면 어떨까? 즉 이런 물건이 되지 않을 답례품을 주면 되지 않을까?


카피:
결혼식 답례품 고민 중인가요?
달달하게 잘 살겠다는 의미로 조청 어때요?


이 답례품은 집 안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벼룩시장행이 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좋아할 가능성이 매우 높죠.
당신의 결혼식을 보고 온 그들은 단 게 엄청 당길 테니까.



앞서 말한 ‘선물 가이드’에 소개된 답례품은 총 다섯 가지였다. 카피에 적용한 조청 외에 잔칫날 귀한 음식을 상징하는 국수, 실용적이라 쓸모 있는 천연 설거지 비누, 가볍게 묶어 놓는 리본 방향제 그리고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핸드타월까지. 선물이라는 건 받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을 때 결정하면 가장 좋다. 그러니까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고 골라보면 당연히 아무거나 선택할 수 없다. 쓸모를 생각하고 취향을 고려하고 얼마나 인상적 일지를 따져보게 될 것이다. 그런 선물이 벼룩시장에 나갈 처지가 될 리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 쓰고 싶어 지는데. 소설에서는 답례품의 부정적인 의미에 대해 말했지만 역으로 이용해서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서 적용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봤다. 중요한 건 어떤 것에서든 아이디어를 얻고 딱 맞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내가 바꿔서 써볼 수 있는 융통성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다양한 글을 읽는 독서가 필수다. 내가 예로 들어 써본 카피 외에 본인이 생각하는 또 다른 카피를 써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향을 받는 사람이 영향을 끼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