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이기호 작가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순전히 내가 여름을 너무 좋아해서 제목만 보고 주문한 책이었다. 근데 그게 내 예상과 달리 여름에 관한 내용만은 아니었다. 여름보다 더 쿨한 한 가족이 거기 있었다. 단편들은 애초에 30년을 연재 시한으로 잡고 시작한 글을 4년 채우지 못하고 마무리 짓게 되면서 책으로 묶게 된 것인데, 가족 ‘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게 진짜 소설이 맞는 건지,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지는 약간 의심(?)스럽다. (누가 좀 알려줬음 좋겠다) 작가의 전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읽었던 터라 그가 쓰는 짧은 소설의 매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 책은 전체적으로는 한 가정의 일상과 육아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공감되는 건 기본이고 중간중간 실소를 자아내는 작가 특유의 유머가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키득거리며 단숨에 다 읽은 이 소설을 직장 동료에게 빌려주었더니 다음 날 그녀가 출근하자마자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지하철에서 눈물이 쏟아져 굉장히 난처했노라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육아 이야기가 대부분인 이 책의 어느 부분이 미혼인 그녀의 눈물을 쏙 빼놨을까 싶어 어느 부분에서 울었어? 라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아픈 몸을 숨기고 끝까지 손주들과 놀아주는 장면에서, 라고 말했다. 맞다, 나도 그 부분에서 찡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코 끝 찡해지는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무릎을 탁 치며 웃게 만드는 부분 또한 꽤나 많다. 예를 들어 음식 못하는 장모에 관한 이 부분처럼.
아내가 셋째를 출산하면서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러 지방에서 올라온 장모와 한 동안 같이 지내게 되는 주인공.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장모의 음식 솜씨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재료들이 각기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는 비유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여태껏 맛없는 음식은 단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단순히 음식이 먹을 수 없을 만큼 맛없다는 이야길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소설가만이 가진 장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도 어떻게든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달라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그들의 탁월한 표현력을 특별한 조리 없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만으로 맛있고 영양가 있는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락 판매에 응용해 보자.
이와 같이 재료들이 각기 따로 노는 음식을 먹고 사위인 주인공은 ‘이제야 밥다운 밥을 먹는 것 같다’고 대답하며 오징어와 암소와 참치가 각자의 길로 돌아가기 전에 얼른 숟가락질에 몰두했다. 진정한 사위의 자세로다. 문제는 이런 장모의 음식을 솔직하기가 투명한 유리그릇 같은 그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먹었을 때 벌어진다.
“나 싫어! 이 미역국 이상하단 말이야!”
하지만 임기응변에 능통한 사위는 장모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재빨리
“다섯 살짜리가 무슨 맛을 안다고 그러세요. 걱정 마세요 맛있으니까.”
라고 대답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역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리액션하는 것만 봐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패널은 먹을 때마다 각기 다른 표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연예인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늘 ‘맛있어요’라는 말밖에 할 줄을 모른다. 나는 지난 계절 한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모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어떤 남자 배우가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맛있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걸 보고 저 친구 다신 예능에 출연 못하겠군, 이라고 내 마음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그 프로를 마지막으로 다른 예능에선 본 적이 없다) 맛없다는 표현을 재료들이 각기 배낭을 메고 어딘가로 간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맛있다는 표현도 상상을 초월할 표현력으로, 그러나 공감할만한 소재로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