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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19. 2017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글쓰기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막 첫 번째 단추를 풀려고 할 때 남자는 문부터 열었다.
여전히 여자가 싫어하는 습관 중 하나였다.
 
<‘호텔 프린스’ 중 전석순의 ‘때아닌 꽃’을 읽다가>



내 생애 첫 책 ‘사물의 시선’을 내놓고 3년 만에 새 책에 대한 출판 계약을 하게 되었다. 처음 책과 달리 나름 나만의 카피 작성 노하우가 담긴 책이라 성격이 좀 다르고 분야도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매여사’(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 사는 이야기) 연재와 달리 오히려 부담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쓴 글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 하는 브런치에만 연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온라인으로 보여질 때 이야기고 책으로 묶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이번 이 더 크다. 하지만 다른 어느 것보다 꼭 책으로 묶고 싶었다. 다행히 이를 알아 봐준 출판사가 있어 더없이 행복하기도 했고 말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서인지 이후에는 몇몇 출판사에서 ‘매여사’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들의 출판 방향이나 기획을 보면 ‘평범하게 사는 대한민국 여자의 일상’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는 워킹맘의 하루’로 조금씩 비슷했다. 유명하고 인지도 높은 전문직 여성이 아닌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 직장 다니면서 애도 키우고 살림도 하는, 매달 카드값을 걱정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 무사하면 됐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요즘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그런 글에 매료되어 일부러 찾아 읽고 흉내라도 내볼까 싶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수요를 아예 모르진 않았지만 내가 과연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는 게 맞는 걸까 싶은 의구심은 늘 있었다.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오늘 무사하면 됐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공감대를 이루는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프로페셔널하게 하루하루를 하얗게 불태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때도 분명히 있다. 나도 가끔은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찾아 읽으니까. (그렇게 해서 동기부여를 얻는 경우도 많고) 그런 글에서 오는 시너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메일로 업무 체크하는 게 아니라 주말 동안 애 뒤치다꺼리에 못 읽었던 연예기사와 ‘창고 대방출’ 같은 타이틀에 혹해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기획전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하면 ‘이 가격이면 쟁여놔야지’하는 가방 배너를 저도 모르게 클릭해보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을 쓰는 사람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히려 당신보다 덜 계획적이고 다소 한심하며 대책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글로 보여주고 싶다. (내가 그렇듯 우린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글에서 얻는 게 분명히 있을 테니까. 하긴 얻는 게 없으면 어떤가)

illust by 윤지민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소중하다 말했던 박완서 작가처럼, 나 또한 글을 쓰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할 때가 더 많고(더 많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이렇게 쓰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라 할지라도 네이버에 들어가서 쇼핑 메뉴부터 누르고 보는 30대 아줌마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라고 말하지만 막상 아이도 자고 마땅히 할 일도 없는 시간이 주어지면 책부터 펴기보다 아이패드로 지난주 무한도전을 찾아 다시 보기 하는 나라도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전에 20분이라도 읽고 자야지, 하고 책을 들고 이부자리에 들지만 막상 책은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잠들 때가 더 많으며 다음 날 아침 알람에 눈을 떠 날씨를 체크하려고 네이버 어플을 켜면 전날 밤 눈 감길 때까지 원피스를 보다가 잠들었다는 증거가 눈앞에 나타나 조금 당황하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 이하의 워킹맘인 나다.


읽고 쓸 수 있다면
이렇게 나이 들어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 드는 게 별로 두렵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대박인 삶을 꿈꾸지도 않으며 읽고 쓰는 일을 할머니가 되어서까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건강만이 허락한다면 지금처럼 사는 게 절대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때로는 인생을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허비하면서 사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더 빠듯하게 살아야 만족하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도 내가 이만큼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잘하고 있다, 이만하면 됐지,라고 나에게 칭찬해주며 살고 있다. 어젯밤 읽었던 윤이형 작가의 단편 ‘대니’에 나온 글처럼 몸이란 건 웃기고 요망한 덩어리라 음식물처럼 혼자만의 시간도 주기적으로 넣어줘야 제대로 일을 하겠다고 우아를 떨어댄다고 하니 비단 넣어줘야 하는 게 어디 혼자만의 시간뿐이겠는가. 순리대로 산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순리라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도 누군가에겐 심심한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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