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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22. 2017

이렇게 사랑해보지 않았다면
모를 일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지난주 소설 쓰기 수업에선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비행운’에 실린 ‘하루의 축’을 다뤘다. 각자 소설을 미리 읽어오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과정에서 한 수강생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작가는 가난해 봤구나, 이렇게 살아 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글을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항에서 환경미화원을 하는 기옥씨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이렇게 살아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가난함의 디테일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어디 가난뿐이랴. 사랑도 마찬가지다. 임경선 작가의 칼럼에서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관한 후기를 보고 사놓은 지는 꽤 되었지만 수개월이 흐른 최근에야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출근할 때 가지고 나가 퇴근할 때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만큼 압축적이다. 뭐랄까, 딱 하고 싶은 말만 써놓았다. 무엇에 관해? 한 남자를 절절이 사랑하는 여자의 심경에 대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수없이 많은 부분 밑줄을 그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이건 이렇게 사랑해 보지 않았다면 모르는 감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 아니 에르노는 본인이 겪은 일만 쓰는 작가다. ‘단순한 열정’ 또한 자전적 소설이라 이미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내 이별로 이어지는 이 사랑 이야기에서 이렇게 절절히 사랑해봤기 때문에 그녀는 (마침내 그를) 포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방송이나 영화를 보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특히 그 내용이 사랑이나 에로티시즘을 다룬 것이거나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이웃집 여인>을 볼 때는 그 사람도 나처럼 우리와 등장인물들을 비교하면서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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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탈리앵 거리를 진땀을 흘리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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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늘하고 조용한 성당 구석에 앉아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각본 중 하나를 세세하게 그려보았다(그 사람과 함께 피렌체로 여행을 온다든지, 십 년 후에 공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상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서나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이 밖에 내가 특히나 공감했던 부분은 그녀가 사랑하는 동안 했던 쇼핑에 관한 부분이다.


그 사람과 함께일 때를 제외하고 내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건 새 옷이나 귀고리, 스타킹 등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하나하나 몸에 맞춰보는 때였다. 그저 바람일 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사람에게 언제나 색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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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 사람이 다른 여자에게 욕망을 품게 되기라도 하면, 이런 치장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옷을 다시 입고 그 사람 앞에 나선다는 것이 내겐 그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일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만큼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나 싶은 그 남자와 연애란 걸 할 때 나는 거의 매주 옷을 샀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2, 3일에 한번 꼴로 옷을 샀다. 옷뿐만이 아니다. 가방, 신발,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까지 꾸밀 수 있는 건 총동원했다. 이유는 당연히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다. 아니 에르노가 말한 것처럼 만날 때마다 색다른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단 한 번도 같은 옷을 입고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연애는 돈이 많이 든다. 퇴근 후 직장 동료와 함께 저녁을 간단히 먹고 쇼핑하러 가는 게 일이었다. 당시 회사가 대학로여서 동대문 쇼핑몰이 가까웠는데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늦게까지 하기 때문에 단골도 많이 만들었다. 내가 지금 이 모양으로 사는 건 그때 돈을 모으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을 만큼 돈을 펑펑 쓰고 다녔다. 매달 초에 월급을 받으면 말일에 잔액이 딱 0원이 되곤 했다. 그때는 보험이나 적금 이런 것도 없이 오로지 벌어서 쓰는데 바빴다. 정말 오늘만 살다 죽을 것처럼 살았던 것 같다. 대책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색다른 모습, 예쁘고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나만 그렇겠는가. 대부분의 연인이 사랑하는 동안 이런 고민을 안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사랑하는 연인들의 심리를 건드릴 수 있는 카피를 써보자.



소설 속 문장:
하지만 똑같은 옷을 다시 입고 그 사람 앞에 나선다는 것이 내겐 그 사람과의 만남을 일종의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일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중에서>


돈이 아주 넘쳐나서 매번 다른 옷을 입을 수 있을 만큼 쇼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버는 돈은 한정적이니 있는 아이템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따라서 옷 중에 하나로 여러 가지 연출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아이템을 팔 때 응용해 보는 거다.


최근 유행하는 로브 드레스의 경우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다. 단추를 다 잠그면 원피스가 되고 반바지나 티셔츠 차림에 가볍게 걸쳐주면 여름 아우터가 된다.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작성할 카피에 적당할 듯하다.


카피:
만날 때마다 다른 느낌(메인 타이틀) 


데이트할 때마다 같은 옷을 입고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연애를 소홀히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면

로브 드레스가 답(서브 타이틀) 



사실 남자들은 이런 디테일까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옷은 잘만 활용한다면 두 가지 버전이 아니라 다섯 가지로도 활용해 입을 수 있다. 여자들의 이런 가상한 노력을 남자들이 알랑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왜 그렇게 겉치레에만 치중했을까 싶은 후회가 남는다. 운동화도 신지 않고 매번 높은 구두를 신느라 고생이었다. 그 사람이 예쁘다고 하면 그게 제일 행복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왠지 내 진짜 모습은 자꾸 숨기려는 자신이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애를 하다가 결국 결혼은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는 남자와 했다. 물론 남편과 연애할 때도 예쁘고 꾸미긴 했지만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데이트할 때 편하게, 이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게 좋아서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에 예쁘게 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야말로 속이 건강한 연애를 했다고나 할까? 지금이야 두 사람 모두 그때의 모습(이미 체중에서 거대한 변화)을 모두 잃었지만 말이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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