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l 20. 2017

누군가를 잊기 위해
뛰는 사람도 있다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그 이별은 다소 일방적이었다. 말하자면 남자는 이별을 통보받은 것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일 해봤다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짜증 나고 불편한지 알 것이다. 나도 당해봤기 때문이다. 처음엔 슬프다가 나중엔 억울한 감정을 비롯해서 이유가 뭘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쨌거나 그 남자는 여자를 잊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줄넘기를 하게 된다.


근데 줄넘기가 생각보다 많은 걸 잊게 해주는 거다. 잊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여자에게 전화 걸고 싶은 손을 붙잡아주고 그 여자에게 달려가고 싶은 발걸음도 멈춰준다. 누군가는 당연히 몸을 단련하기 위해, 살을 빼기 위해 줄넘기를 열심히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남자처럼 사랑했던 여자를 잊기 위해 땀을 흘리기도 한다.

소설 속 문장: 
아주 잠깐씩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으므로 줄넘기는 유용했다. 두 손으로 줄을 회전시키는 동안엔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없었고 제자리에서 도약하는 순간엔 그녀가 사는 동네로 걸어갈 수 없었으니까. 줄은 쉬지 않고 되돌아오고, 나는 멈추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김혜진 ‘어비’ 중 ‘줄넘기’에서>

그럼 우리는 보편적인 줄넘기의 효과보다 이런 쪽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안 좋은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하는 달밤의 줄넘기 말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의 목적보다 이런 이유로 운동을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놓고 줄넘기의 특징에 대해 열거돼 있는 소설 속 문장을 만나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문장을 보면 당연히 밑줄 그어놓고 언젠가 쓰게 될 날을 고대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완성 카피:
제자리에서 그녀를 잊는 법
(메인 타이틀)

줄을 회전시키는 두 손은 그녀에게 전화할 수 없고
제자리에서 도약하는 두 발은 그녀에게 갈 수 없다.
매일 밤 쓰디쓴 술로 그녀를 잊기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로 했다.
내가 멈추지 않는다면 줄은 쉬지 않고 돌아오니까.
(서브 타이틀)


색 다른 접근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준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혹은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별)인데 그럼 나도 이렇게 그 사람을 잊어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다. 소설로 쓰는 카피는 이런 공감대 비중이 매우 높다. 이게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아도 좋다. 열명 중 한 명이라도 누군가 공감하면 나는 그게 좋은 헤드라인이고 괜찮은 타이틀인 것 같다. 줄넘기를 꼭 체중조절이나 건강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연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