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ug 03. 2017

불편했던 경험을 꺼내보자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불편했던 사소한 행동이나 감정은 딱히 누구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 감정이구나, 내가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화장을 잘 못하는 나는 그나마 타고난 피부가 봐줄 만한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균 1, 2만 원대의 토너와 로션을 바르고 선물 받거나 공짜로 얻은 게 아니라면 굳이 에센스까지 사서 바르진 않는다. 세안 후 토너를 화장솜에 묻혀서 좀 닦아내고 얼마 전 형부가 미국 출장에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샀다는 랑X 에센스를 이마와 양 볼에 떨어뜨려 톡톡 두드려 흡수시키는 정도가 기초화장의 전부다. 일주일에 한 번은 샘플로 얻은 영양크림과 또 샘플로 받은 수분크림을 바르고 잔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굉장히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마스크팩 호사를 부린다.  


나는 유독 화장품이나 속옷에 들이는 돈을 아까워하는 타입인데 이 모든 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어서인 것 같다. 구두, 가방, 옷 등은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가능하면 유행하는 스타일로 구비해 놓으려고 하는데 화장품 같은데 돈 쓰는 건 매우 아깝다.


서론이 길었는데, 여하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에 바르고 자는 이 수분크림 얘기를 하려는 거다. 내가 선물 받은 수분크림도 제형이 꽤 진득해서 한번 바르면 시럽을 뒤집어쓴 것처럼 꾸덕꾸덕하다. 이렇게 바르고 잠자리에 들 때면 베개에 묻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불면을 모르는 나는 머리가 베개에 닿았다 하면 잠들어서 조심한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에 머리카락이며 각종 섬유먼지가 잔뜩 붙어있어 과연 이 수분크림이 얼굴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 효과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잠들기 전이 아닌 시간에 따로 시간을 만들어 관리하기 어렵다. 그냥 바르고 자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 바르는 게 아니라 세안하면 수분 공급이 어느 정도 되는 워터팩을 보게 되었다. 해당 상품의 기획전에도 참여한 바 있어 좀 더 자세히 이 상품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진득한 수분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내게는 큰 매력 포인트였다. (스타일이 완전 다른 두 제품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하지 않겠다, 그건 각자의 피부 상태와 취향에 맡기자) 어쨌든 패딩워터팩은 물에 희석해서 세안만 해줘도 촉촉해지는 제품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한 가족, 그중 82년생 김지영이란 여자의 삶을 심플하게 쓴 경장 편 소설인데, 우여곡절이 많아 버라이어티 한 일대기라기보다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 같아서 무척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다. 이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김지영이 겪은 수분크림에 대한 일화를 읽고 이 역시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불편함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문장: 
1시가 넘어서야 수분 크림을 듬뿍 바르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얼굴에 두껍게 덮인 크림이 이불에 묻을까 봐 마음대로 뒤척이지도 못하고 꼿꼿하게 누워
눈만 껌뻑이다가 새벽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 결말이 없는 많은 꿈을 꾸었다.
참을 수 없게 피곤했고, 화장이 잘 먹지 않았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 믿는다.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에게 내가 알게 된 패딩워터팩은 꽤 관심 가는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한 경험을 살려 카피를 써보는 건 어떨까?


완성 카피:
어젯밤 무엇 때문에 베개를 적셨나요?
(메인 타이틀)
두껍게 바른 수분크림이 베개에 묻을까
꼿꼿한 자세로 잠을 잔 적이 있다면
패팅 워터팩으로 마음껏 뒤척이다 잠드세요.
축축한 베개는 없고 촉촉한 얼굴만 남습니다.
(서브 타이틀)

불편한 감정이나 행동은 특히 더 강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이런 감정은 사람들이 잘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어서 누군가 툭 건드려주면 우르르하고 쏟아지게 돼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지만 카피를 쓸 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글쓴이가 자신을 마음껏 내려놓고 자세를 낮출수록 독자는 늘어난다. 창피하다고 생각할 것 없다. 나를 내려놓고 까발리는 일,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이전 02화 얻어걸린 감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