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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17. 2017

없는 이유도 만들자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반드시 밑줄을 그어놓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문서 파일로 만든다. 이렇게 틈틈이 작업해 놔야 카피 쓰는 작업에 필요할 때 책이 없어도 검색해서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밑줄 필사는 당시에는 귀찮아도 꼭 미루지 않고 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 보통 회사에 출근한 직 후 몸과 정신을 깨우는 워밍업처럼 하고 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번 소설로 카피 쓰기에 들어가 보자. 오늘 응용할 내용은 운동화와 관련된 것으로 어떤 신제품이 출시될 때 뭔가 특별한 기능이 있어 새롭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단순히 시즌이어서 발매되는 제품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제품의 카피는 사야 하는 이유나 의미를 담당 엠디나 카피라이터가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럴 때 오늘 다룰 문장은 매우 유용하다.

소설 속 문장:
신발은 발하고 바닥이 닿는 접점이잖아.
난 그게 익숙해야만 낯선 곳을 밟을 수 있는 것 같아.
<은희경 ‘중국식 룰렛’ 중 ‘대용품’에서>


우선 신발에 대한 공감할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잘 풀면 카피가 나올 수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이럴 땐 특별한 예가 아닌 근본적인, 원초적인 이야기라면 풀기가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신발은 ‘발바닥과 바닥이 닿는 접점’이란 표현을 보자. 이런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걸 작가가 쓴 것처럼 표현하진 못했다. 우린 소설가의 이런 표현력을 조금 빌리는 것이다. 신발은 딱딱한 길바닥과 부드러운 발이 만나야 하니 당연히 편하고 내 발에 익숙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낯선 곳, 즉 여행에도 고민 없이 이 신발을 신고 떠날 수 있을 테니, 아니 그러라고 (기획전을 통해) 제안할 수 있으니까. 사실 지금은 이런 과정을 길게 풀어서 쓰곤 있지만 자주 응용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이런 과정 없이, 감각적으로 느낌이 온다. 좋은 문장은 당연히 어딘가 표출하고 싶은 게 읽는 사람의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장을 만나면 우린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어 SNS 같은 창구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다.

신제품에 대하여 새롭다, 신선하다, 놀랍다, 라는 말로만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재미가 없다. 조금만 다르게 비틀어 생각해 보자. 때로는 없는 이유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카피라이터의 역할이다.

완성 카피: 
바닥과 발이 닿는 접점에 OOO(제품명)
낯선 곳을 밟을 땐 내 발에 익숙한 OOO


바닥과 발이 닿는 접점에 내가 팔고자 하는 신발이 존재한다는 점과 낯선 곳을 밟는 여행을 떠날 때 이 운동화를 신으면 발에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다는 점을 강조한 카피다. 고민하면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단 시간에 이런 문장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소설에서 읽은 이런 문장을 잘 메모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먹으면 되는 것이다. 이 카피에서 기억할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여행을 ‘낯선 곳을 밟는 것’이라고 풀어쓴 점이다. 여행이라고 했으면 다른 카피와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을 테지만 여행을 ‘풀어서’ 써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가진 카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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