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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24. 2017

'좋다' 말고 다른 표현은 없을까?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이불 좀 더 두꺼운 거 없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추위에 얇은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있던 남편이 이불 타령을 한다.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장롱 문을 열고 겨울 이불을 꺼내 침대 위로 툭 던졌다. 초겨울은 난방기, 가습기, 보습제 다음으로 이불 같은 침구를 판매하려는 기획전이나 이벤트가 많아지는 시기다. 시즌마다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 기획전이 있기 마련인데 침구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메인 타이틀을 ‘이불 기획전, 침구 기획전, 겨울 침구 이벤트’ 등 고정된 문구로 많이 쓰는데, 봐야 할 게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조금 다르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카피를 써보자. 


엊그제도 베개와 관련한 이슈 문구를 작성하면서 ‘잠의 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관련 서적을 좀 찾아보다가 매일 밤 숙면을 취하면 긍정적인 시각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읽었다. 뿐만 아니라 한 연구에서는 매일 밤 충분한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는 것이 봉급이 크게 오르는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수면의 질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참조: 어바웃 해피니스_어맨다 탤벗) 카피를 작성할 때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소스를 찾아내곤 하는데 이렇게 딱 알맞은 내용을 발견하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확실한 정보지만 좀 편하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과 어투는 다른 이벤트나 기획전에도 참고할만한 소지가 많기 때문에 꼬박꼬박 메모해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침대와 매트리스는 형편이 허락하는 한 최고급품으로 구입하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잠의 질을 결정짓는 데 좋은 침구는 매우 중요하다. 정한아 작가의 단편집 ‘애니’를 읽다가 좋은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를 천국에 간 것으로 비교한 부분을 발견했다. 호텔에서 자면 잠이 더 잘 온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지런히 정돈된 좋은 품질의 침구에서 자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텔 침대에 눕는 여자나 남자가 ‘아~ 천국에 온 것 같다’라고 다소 뻔한 말을 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깨끗이 빤 매트리스 커버 위에서 푹신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때면 그날 겪은 온갖 짜증이 다 잊힐 만큼 행복한 기분이 느껴지기 때문에 공감하기에 충분한 문장이었다. 또한 이 말은 일반적인‘좋다’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소설 속 문장: 

그녀의 유일한 사치는 좋은 이불과 베개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 뜨거운 물로 씻고 나와 깨끗한 이불을 덮고 누우면 죽어서 천국에 간 기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그녀의 두 가지 소망이었다. 고통 없이 죽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정한아 ‘애니’ 중에서>


이 소설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이불만은 좋은 것으로 덮어야 해. 그래야 나쁜 꿈을 안 꾸지.” 

어머니는 두툼하게 솜을 넣은 이불을 손으로 쓸면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꾸밀 때 제일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침실이라고 한다. 대체로 거실이나 주방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에 더 신경을 쓴다는 얘긴데 나부터도 침실도 그렇고 내가 덮고 자는 이불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게 사실이다. 저렴한 제품을 사서 덮다가 부피가 워낙 크다 보니 세탁도 일이다 싶어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소설에서처럼 엄마가 딸에게 좋은 이불을 덮어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 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질 좋고 깨끗한 이불을 덮었을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러니 천국에 비교할 수밖에. 


완성 카피: 

매일 밤 경험할 수 있는 천국 (메인 타이틀)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따뜻한 욕조 물에 몸을 녹입니다. 

숨이 살아있는 두껍고 포근한 OO이불에 몸을 묻습니다. 

당신이 누워있는 그곳이 매일 갈 수 있는 천국입니다. (서브 타이틀)


29CM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기획전 카피를 작성하는 업무는 대부분 담당 엠디가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따로 카피만을 뽑아주는 인력이 없기 때문에 엠디 입장에서는 그 업무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다.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방법이고 모든 기획전에 적용할 수 없다. 다만 이런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는 소스를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소설뿐만 아니라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팟캐스트, 동료가 툭 내뱉은 말에서도 기획전 타이틀이나 이벤트 문구는 얼마든지 뽑을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꼭 소설에 나온 문장으로 카피를 뽑을 필요는 없다. 느낌과 분위기 등을 공감하고 소스로 이용하면 되는 거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본 페이스북이나 버스에서 읽은 에세이에서 찾은 공감 글은 귀찮아도 꼭 저장하고 메모해 두자. 언젠가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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