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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31. 2017

얼마나 싼 지가 구매 결정의
전부인 상품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내가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문장의 부류 중 하나는 어떤 사소한 물건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그렇게 사용해서 벌어지는 장면을 읽었을 때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작은 옷장이라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어서 카디건 하나를 빼자 여름 원피스 두 벌이 옷걸이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엄마는 사탕이 행여 그녀의 목에 걸릴까 봐 이로 사탕을 깨물어서 그 조각조각을 그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아버지의 밥공기 옆으로 금세 가시가 쌓였다.” <김이설 ‘오늘처럼 고요히’>


“쁘억, 쁘억, 쁘억, 쁘억. 와이퍼가 닳아서 소리가 났다.” <김이설 ‘오늘처럼 고요히’>


한 칸짜리 옷장이 내 몫의 전부였던 그땐, 싸구려 원피스와 유행이 지나도 버리지 못한 코트들이 빼곡히 걸려있어 어떤 옷은 옷들 사이에 가려져 있는 줄도 모른 채 제 계절을 지나칠 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블라우스 하나를 빼려면 걸려 있는 옷을 잡고 힘껏 반대쪽으로 밀어 옷을 빼야 했다. 20개월을 눈앞에 둔 아들에게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위해 사탕이라도 먹일라치면 행여 목구멍에 걸리기라도 할까 내 이로 꽉 깨물어 조각 내서 먹인다. 점심에 동료들과 간 백반 집에서 나온 고등어조림을 먹으며 밥그릇 옆에 쌓여가는 열 개 남짓의 가시를 본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타고 있을 오래전 내 SUV 스포티지(일명 검둥이라 불렀던)는 10년이란 세월에 와이퍼가 매끈히 움직이지 않아 더러워진 앞 유리를 닦기라도 할 때면 정말 ‘쁘억 쁘억’ 힘겨운 신음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나의 이 모든 상황이 소설의 문장들과 너무 닮았다.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쇼코의 미소’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가 오래된 사진들을 고무줄로 묶어 신발 상자에 넣는 장면을 읽었다. 


소설 속 문장: 

쇼코가 보내온 사진은 노란색 고무줄에 묶여서 신발 박스의 맨 아래에 보관되어 있었다. 엄마가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쪽파를 다듬는 사진, 할아버지와 내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너는 모습, 할아버지와 엄마가 소파에 앉아서 어색하게 웃는 사진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베레모를 쓰고 천변 벤치에 앉아서 배드민턴 라켓으로 파리를 쫓아내는 듯한 포즈를 잡은 사진도 있었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중에서>

소설이란 원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하는 이야기니 이런 장면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것일지 모르는데도 왜 어딘가 뭉클한 감정이 드는 걸까? 나 또한 새 신발을 살 때마다 상자는 늘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버리지 못할 물건을 담아두는 데 사용하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마땅히 앨범이나 액자에 같은데 꽂아 둬야 할 사진을 고무줄로 묶어 상자에 담아 놓는 심정이 왜 이해되는지… 그 사진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앨범에 꽂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양이 많거나 별게 아니어서 신발 상자에 담긴 채로 먼지 쌓인 책장 위에 혹은 침대 밑 구석진 곳에 처박히는 것이다. 


낡고 오래된 사진들이 고무줄에 묶여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쯤 휘어진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고무줄에 의해 더이상 낱장이 아닌 덩어리가 된 사진의 무게가 손에 전해질 듯하다. 노란색 고무줄은 사진을 덩어리 짓고 나중을 위해 모아 놓는 영수증을 묶거나 케이스를 잃어버린 색연필을 한데 모아두거나 연필꽂이의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볼펜을 동여맨다. 그밖에 어렵게 구한 포스터를 말 때나 잘 그리진 못했지만 버리긴 아쉬운 내 유년시절 데생을 돌돌 말 때 쓴다.

뜬금없는 고무줄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다가 남편에게 고무줄로 묶을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이나 대답 없던 그의 메신저 창이 노란빛을 띠며 깜빡였다. 


“전 직장 명함”


완성 카피:

‘차마’라는 고무줄 (메인 타이틀)


액자에 꽂히지 못한 B컷 사진들 (아래는 서브 타이틀)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 모아둔 영수증

집을 잃은 색연필과 아직 써지는 볼펜들 

밝힐 순 없어도 내 전부인 아이돌 포스터…

그리고 다시 펼쳐 볼 일 없을 게 뻔한

처음 A+ 받은 쥴리앙 데생 도화지까지. 


여태껏 정리라는 도구로 묶었던 노란색 고무줄은

차마 버리지 못할 추억을 간직해줄 질긴 끈이었다.


고무줄은 묶음에 얼마, 하는 식으로 수량과 가격으로만 그 가치를 판단해 왔다. 고무줄이 뻔하지 뭐. 꼭 쓰려고 하면, 필요해지면 안 보이더라? 하는 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고무줄이다. 너무 사소해서 잊고 지냈지만 당신이 지금 당장 서랍을 뒤지면 하나쯤 반드시 나올 만큼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있는 것 또한 고무줄이다. 이런 물건은 비단 고무줄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팔 때 그 일이 뻔해지거나 지겨워지거나,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 않기 위해선 그 뻔한 것을 다르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내 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몇 천 원, 몇 백 원짜리 고무줄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동기부여가 될 계기를 판다고 생각해 보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몇 줄의 카피가 A라는 사람에게 어떤 계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계기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 보자, 한 글자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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