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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07. 2017

일상에서 건진 대화로 쓴 카피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이은희 작가의 ‘1004번의 파르티타’는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재작년, 소설 쓰기를 배우러 신촌으로 주말마다 학원을 다녔던 때 수업 시간 중에 처음 이은희 작가의 ‘1교시 언어이해’와 ‘선긋기’를 접했다. 1교시 언어이해는 단연 독특한 소설로 기억된다. 특히 소설의 방식과 발상이 그랬다. 기억에 의하면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말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아무렇지 않아서 내겐 인상적이었다. 

이건 내가 쓰는 말인데? 이건 우리 엄마가 했던 말이잖아? 이런 말도 소설이 된다고? 그렇다면 내가 쓰는 말도 소설의 문장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문장이, 아무렇지 않은 말들이 차곡차곡 쌓인 일상어가 많은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근무 시간에 어느 여직원이 지나가던 배너를 클릭해 건드리는 바람에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황에서 나온 대화이다. 실제로 포르노 영상이 틀어진 적은 없지만 가족보다 컴퓨터를 많이 보고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 겪었음직한 바이러스 감염 상황의 대화. 이 대화에는 그 어떤 감흥도 없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이다. 


같은 소설집에 있는 단편 ‘선긋기’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아줌마 이상한 사람 아니야. 요 앞에서 부동산 해. 요 동네에만 아줌마 집이 세 채야. 요 건너 삼성아파트에도 집이 있고, 롯데캐슬에도 하나 있어. 거기 집은 복층이지. 내가 일을 너무 하느라 우리 애 외지 나갔는데도 밥을 안 챙겼어. 워낙 키가 커서 뭐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다고 하는 애인데, 집 밖에서 잘 얻어는 먹고 있나 신경 썼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못했어.”


이건 사실 문학작품 즉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기보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은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에 가깝다. 약간의 내용만 다를 뿐 분명 나는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것만 같다. 그러니까 소설 속 대화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어를 말하고 있고 그 일상어는 쇼핑몰 같은 편집샵에서 접하면 조금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에 우리 눈에 쉽게 따라붙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접근이 쉬운 단어나 문장으로 타이틀을 만들고 기획전 카피를 쓰려고 노력한다. 접근이 쉽다는 건 여느 이벤트나 기획전에 많이 쓰는 말이라는 게 아니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신선한 조합의 단어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소설 속 문장:

아가, 꽃 봐라. 속상한 거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는 이쁜 거만 봐라,라고 할머니가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이은희 ‘1004번의 파르티타’를 읽다가>

꽃을 파는 이벤트 페이지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29CM에도 당연히 꽃을 판다. 꽃은 일찍이 배달이 되는 서비스였기 때문에 쇼핑몰에서 고르는 선물 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꽃은 대부분 연인, 부부, 부모님, 친구에게 선물하는데 그때마다 통속적인 말로 꽃을 파는 건 신선하지 못할뿐더러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 연인과 사랑을 나눠라, 대놓고 꽃을 선물해라 등등의 말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들었음직한 말로 타이틀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소설 속 문장은 이은희 작가의 소설집 ‘1004번의 파르티타’ 중 ‘푸른 문을 열면’이란 단편에 나오는 구절로 할머니가 손녀인 주인공에게 했던 말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저 문장을 읽다가 바로 가방에서 파란색 볼펜을 꺼내 밑줄을 그었다. 특별할 것 없는 말이지만 울림이 있고 아련한 마음이 느껴졌다. 속상하고 답답한 거 많은 요즘 저 문장을 보고 당장 집에 들어가는 길, 한 단에 5천 원 하는 프리지어라도 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완성 카피:

속상하고 답답한 건 잠시 잊고

지금은 예쁜 것만 보세요.


다른 카피보다 강한 임팩트는 없을지라도 누군가는 나와 같다면 ‘정말 그럴까? 꽃이라도 보면 마음이 조금 나아지려나’ 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나 할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좋은 거, 예쁜 것만 보고 살라고. 보는 대로 마음이 간다는데 하물며 꽃을 바라보면서 안 좋은 감정이 생길까? 잠시라도 아름다운 자태에 그윽한 향기에 취해 당장의 속상함 마음, 시련쯤 툭툭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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