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몇 장 남지 않은 다이어리를 보며 한 해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달력이나 다이어리, 즉 새로 마음 다질 것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나도 작은 일력과 몰스킨 데일리 다이어리를 주문해 서랍에 넣어 놨다. 몰스킨 데일리 다이어리는 이미 7, 8년 전부터 쓰고 있다. 딱히 디자인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디자인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모두 같은 다이어리가 모아져 있는 것만 봐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몰려온다.
오늘은 다이어리에 관한 카피를 써보려 한다. 몇 년 전에 읽은 정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에는 ‘거의 매해 1월까지만 기록된 다이어리’라는 문장이 나온다.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데일리 다이어리를 쓰기 전까지 다이어리를 사놓고 거의 1, 2월까지만 열심히 쓰다가 그대로 방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문장을 카피에 그대로 적용시키기보다 여기서 발상해 다이어리 기획전에 응용할 수 있는 타이틀을 만들어 보자.
소설 속 문장:
다이어리는 거의 매해, 1월 말까지만 기록되어 있었다.
<정이현 ‘너는 모른다’를 중에서>
다이어리 기획전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작심삼일’이다. 소설 속 문장처럼 희망과 기대, 다짐으로 부푼 마음을 담아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기 시작하는데 연말까지 지속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 카피 쓰는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문구가 ‘3일마다 작심삼일’ 이런 게 있겠다. 초반에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이젠 좀 식상하다. 작심삼일이란 말 자체가 조금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흥청망청한 12월이 가면 그럴 마음 없었는데도 뭔가 다짐을 해야 할 것 같고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숫자 1월이 도래한다. 미리 사두었던 다이어리를 꺼내 1월부터 적기 시작한다. 스티커도 붙이고 펜으로 아기자기하게 첫 달을 장식한다. 사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처음을 너무 대단하게 시작하면 뒤로 갈수록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처럼 안 하면 해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이어리 첫 장을 조금 덤덤하게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딱 필요한 것만 적고 과한 꾸밈은 없는 담백한 작성법으로 시작하는 거다.
다이어리에는 수많은 다짐과 자극이 존재한다. 그 다짐은 계획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다가올 수요일 누군가와의 일정을 생각하면 그 안엔 설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이어리엔 무수히 많은 감정이 존재하겠다. 그래서 더 비밀스럽고 은밀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완성 카피:
계속 적겠습니다.
1월의 다짐이 1월에 갇혀있지 않도록.
실제로 구정 연휴부터 다이어리 쓰는 것에 의욕도 좀 잃어가고 어딘가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면서 책상 위 다이어리에 소홀해지기 시작한다. 늘 갖고 다니며 쓰기 위해 크기가 작은 다이어리를 골랐지만 그마저도 부담스러워 놓고 다니기 일쑤다. 어떤 카피를 작성할 때 다이어리 판매에만 치중한 카피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쓰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정작 드러날 문제점과 그 해결 방법 등을 모색해 주는 카피도 필요하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카피는 ~하세요, 라는 식이 대부분이지만 꼭 그럴 필요 없다.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카피를 써보는 방식도 필요하다. 당장 사, 보다 구입해서 꾸준히 잘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카피 말이다. 내가 예시로 적은 카피는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 겪었을 상황에 대해 짚어준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아, 나도 이런 적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그런 우리의 습관이나 버릇을 건드려 주기 때문이다. 1월에서 끝난 다이어리가 얼마나 많았던가!
다음 다이어리는 12월 마지막 장까지 손때가 탄 당신만의 다이어리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기록하는 다이어리는 한 사람의 1년 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