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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28. 2017

쓰레기통을 파는 카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틈나는 대로 휴대폰을 들어 인스타그램을 확인한다. 점심시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며 페이스북을 들여다본다. 모두 각자의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SNS가 없는 시절엔 과연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몇 달 전 회사에서 진행한 이벤트로 알게 된 ‘립반윙클의 신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시사회 관련 이벤트를 통해 알게 된 나는 감독이 원작 소설을 썼다는 이야길 듣고 영화를 보기 전 책부터 읽었다.


실제 일상에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주인공 나나미가 SNS 세계에선 그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자처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에 ‘이모’라는 단편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 관계는 끊을 수 있어도 온라인 관계는 끊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투명한 유리로 나를 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가족관계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나 온라인 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오로지 내가 쓴 글, 내가 만든 이미지로만 구성된 우주라는 이야기가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아, 하려던 말이 이게 아닌데 책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어쨌든 립반윙클의 신부에 나나미는 SNS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 그와 결혼하면서부터 심하다 싶을 만큼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소설 속 문장:

버리는 신이 있으면 줍는 신도 있다고 하잖아.

<이와이 슌지 ‘립반윙클의 신부’ 중에서>


사실 이 말은 일본 속담이다. 검색해 보니 꽤 흔히 쓰이는 말인 듯했다. 어떤 운명에 처하더라도 어떤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저 너머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뜻. 어딘가에서 버림을 받았다면 누군가는 당신을 필요로 할 거라는 뜻이란다. 나는 단순히 이 말의 속 뜻보다 그저 버리는 신, 줍는 신이란 말에서 쓰레기통이 떠올랐다. 이 말을 응용해 쓰레기통 파는 카피를 써보면 어떨까?


완성 카피:

신(神)이 머무는 곳 (메인 타이틀)

쓸모없고 더러워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곳. (서브 타이틀)

신의 너그러움이 없다면 이 모든 걸 받아줄 리 없다.

그곳에는 신이 머문다.


이 카피를 쓰면서 고른 쓰레기통은 조금 고급스러운 자태(?)였으면 했다. 그렇게 고르다 보니 30만 원이 넘는 가격의 쓰레기통을 골랐는데, 사실 이 돈을 주고 쓰레기통을 살 리가 없다. 다만 좀 더 신성한(?) 모습의 웅장함을 뽐내는, 정말 신이라도 보는 것 같이 대단한 모습의 쓰레기통이라면 이런 카피도 어울리지 않을까? 이번 소설로 카피 쓰기의 포인트는 쓰레기통을 팔면서 쓰레기통이란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전혀 다른 발상으로 사물을 대하는 방법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니까 일요일 저녁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그때그때 버리면 좋겠지만 무척 게으르고 귀찮아서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 버린다. 베란다에 쌓인 쓰레기를 볼 때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걸까, 싶은 죄책감이 든다. 마트에서 치약 세트라도 사면 마트 쓰레기통 앞에서 열심히 포장을 벗겨 쓰레기 문제까지 해결하고 오는 엄마들의 심정이 이해 간다. 그건 직접 쓰레기를 내다 버려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쓰레기를 버린다.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쓰레기통은 묵묵히 받아낸다. 그것이 쓰레기통의 운명일지언정 한 번쯤은 쓰레기통에게 고마운 마음 정도는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 존재 자체에서 빚어지는 감사한 마음을 그냥 지나칠 게 아니라 뜨거운 물로 세제 풀어서 싹싹 닦아주는 배려도 보여주면 좋겠다. 현관을 잘 정리하고 쓰레기통 주변을 깨끗이 하라는 말이 단순히 풍수지리나 미신에 불과할지라도 지켜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혹시 모르지, 진짜 그곳에 신이 살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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