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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21. 2017

가격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자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별로 문제 될 게 없는 것 같은 문제소설을 묶어 놓은 ‘2016 올해의 문제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시대의 풍향계라고 한다. 나는 동시대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대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대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래서 더욱 현재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12편의 단편이 내 마음에 콕콕 박혔을 것이다. 이 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문장이 있는 소설은 이의경 작가의 ‘물건들’이다. 사물, 물건, 상품, 이런 단어에 왜 귀가 솔깃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2016 올해의 문제소설’을 사서 처음 읽기 시작한 소설 또한 ‘물건들’이었다. 


우연히 다이소에서 만난 대학 동기 남녀가 있다. 그들은 1층부터 5층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진열돼 있는 다이소의 3층 애견용품 코너에서 재회한다. 하필이면 왜 다이소인가. 그건 이 두 사람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배경 그리고 취향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나도 다이소를 종종 간다. 게다가 좋아한다. 한번 구경하기 시작하면 예정에 없던 물건을 잔뜩 사서 나올 때도 있다. 사실 그래도 주머니가 홀쭉해질 정도는 아니어서 부담 없다. 이렇게 괜찮은 물건이 3천 원밖에 안 해?라는 생각으로 집어 들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빨간색 바구니 한가득이다. 저가형 백화점이자 만물상인 다이소에 가는 이유는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기도 하지만 아이쇼핑을 하기 위해서 가기도 하는데 일반 백화점처럼 부담이 없어서 어딘가 알 수 없는 여유를 부리게 된다. 대부분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라 왠지 주눅 드는 백화점과는 다르다. 


그렇게 아이쇼핑을 하다 보면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한 번쯤 써보고 싶게 만드는 물건이 보이게 마련이다. ‘물건들’의 ‘나’ 또한 대학 동기인 영완과 다이소 만남 이후 동거를 시작하면서 왠지 가능할 것 같은 결혼생활을 꿈꾸기 시작하는데, 마치 새댁처럼 평소 자주 가지 않던 다이소 2층의 생활용품과 주방용품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전엔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것 같은 생각에 이것저것 손에 쥐어 본다. 


소설 속 문장:

사람의 상체 모양의 판에 와이셔츠를 입혀놓고 다림질을 할 수 있는 다용도 다리미판, 특별한 날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티라이트와 유리 캔들 홀더, 계란을 망가뜨리지 않고 조각내 주는 스테인리스 계란 절단기, 상큼한 요리의 맛을 살려줄 레몬즙 짜개까지. 왜 예전에는 이런 물건들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싶게 기발하고 유용한 상품들이었다. 물론 이런 물건들은 자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희소성으로 인해 그 물건들은 좀 더 가치 있는 무언가로 여겨졌다. 

<김의경 ‘물건들’ 중에서>

그런 게 있다. 저걸 쓰면 내 삶이 좀 윤택해 보일 것 같은 물건. 그게 막 돈이 많아서 윤택해 보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물건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오는 윤택함이다. 네모난 버터를 빵에 바를 때 쓰는 버터나이프나 향초를 연기와 그을음 없이 끌 수 있는 윅 디퍼 그리고 레몬을 손쉽게 짤 수 있는 짜개 등. 모두 없어도 그만이지만 사용함으로써 저 사람은 작고 사소한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되는 물건 말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런 희소성 있는 물건들은 좀 더 가치 있는 무언가로 여겨지게 한다. 내가 둔감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물건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 하고 자랑하는 것엔 소극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SNS엔 적극적으로 노출한다. 어차피 이미지는 작은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것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물건으로 자신의 취향을 어필하기엔 더없이 좋은 출구가 아닐 수 없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좁은 원룸에 음식 냄새가 빠지지 않자 친구가 향초를 켰다가 나갈 때쯤 후, 불어 초를 끄면서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보고 ‘윅 디퍼’라는 게 있는데, 이건 심지를 초에 담가서 끄기 때문에 연기도 그을음도 없이 촛불을 끌 수 있고 심지에 초가 덧입혀 지기 때문에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라고 아는 것을 말해줬다. 그 친구는 그런 건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괜히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그 물건은 시중에서 싸게는 천 원 미만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의 희소성을 더 느낄 수 있다. 


완성 카피:

사소한 것의 희소성,

잘 녹는 버터를 바를 땐 우드 나이프를 쓰세요.


앞서 예를 들었던 윅 디퍼의 경우와 비슷하게 버터나이프도 우드 버터나이프를 쓰는 이유가 있다. 은이나 스테인리스보다 덜 녹는다는 점. 이 내용도 소설에서 나오기에 활용했다. 어쨌거나 저렴한 물건을 사는 데서 오는 즐거움과 그에 버금가는 가치를 고객에게 인지시켜주는 카피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잘 모를 수도 있는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그 물건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것. 전까지 그저 숟가락으로 푹 떠서 식빵에 발랐던 버터를 버터 전용 나이프로 바른다고 생각해봐라, 왠지 어제의 나와 조금 다른 내가 돼있을 것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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