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요즘 출퇴근 길에 읽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손바닥만 한 문고본으로 읽고 있다.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는 무게와 파란색 테를 두른 표지가 추운 날씨의 종종거림과 하얀 입김에 잘 어울린다. 볼이 시리고 귀가 얼 정도의 날씨에 매우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큰 맥락없이 풍경을 묘사한 글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자주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바라보게 된다. 책 속의 설국과 내 피부에 닿는 서울의 겨울을 번갈아 가며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빠져나간 오늘 아침 서울도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첫 문장만으로도 눈앞의 하얀 설경이 펼쳐지는 듯하다. 묘사가 두드러지는 소설인 만큼 인물들에 대한 외적인, 심적인 묘사 또한 세밀하다. 소설이 카피 쓸 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것을 보고 써주는 디테일. 물론 이런 용도로 쓴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소설 속 문장:
여자의 인상은 이상할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밑의 옴폭진 곳까지도 깨끗할 것 같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중에서>
‘발가락 밑의 옴폭진 곳’ 여기만 읽어도 발의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곳이 특히 깨끗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마저 깨끗할 것 같다는 건 얼마나 깨끗해 보인다는 뜻일까? 하얗다 못해 투명한 여인의 살갗과 뾰루지나 각질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가 눈에 선하다. 오래전 에세이에도 한번 썼듯이 나는 발 각질에 유독 관심이 많은 여자로서 겨울철이면 각질과의 싸움에 늘 지고 만다. 외할머니 때부터 엄마, 그리고 나까지 우리 집안 여자들은 모두 발뒤꿈치 각질이 좀 있다. (이것도 유전이란다) 그래서 늘 풋크림을 바르고 또 바르고 틈 날 때마다 물에 불려 각질을 미는데도 쉽사리 좋아지지 않는다. 유전의 힘이란…
완성 카피:
그녀 발가락 밑 옴폭진 곳에
손가락을 넣어도 향기만 묻어날 뿐
부드럽고 고운 발을 위한 풋크림
평소 잘 표현하지 못하는 신체 부위라는 점이 이번 카피의 묘미였다. 발가락 밑의 옴폭진 곳을 손가락으로 쓸어도 때가 아니라 향기만 묻어난다. 이거야 말로 소설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 아닐까? 우리가 흔히 깨끗함을 드러낼 때 자주 쓰는 얼굴, 손, 머리카락 등이 아니어도 진짜 청결을 나타낼 수 있다는 또 다른 묘사의 매력도 배울 수 있다.
뻔한 카피가 되지 않기 위해선 시도하지 않았던 표현을 자꾸 써봐야 한다. 하다 못해 이런 하찮은 신체 부위도 좋은 소스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소설을 읽으며 그런 점은 많이 배우고 있다. 언젠가 소설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런 표현력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