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여자는 향에 민감한 존재다. 남자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멀끔하게 잘생긴 사람도 곁에 다가섰는데 악취가 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아웃이다. 반면 내 이상형도 아니고 관심 밖의 사람이었는데 좋은 향이(내가 좋아하는 향이면 더더욱) 맡아진다면 없던 호감도 생길 수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고등학교 때 다녔던 입시 미술학원에 스물일곱 살 총각 선생님이 새로 왔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좋은 향이 났다. 향수는 아닌 것 같고 비누향 같기도 했다.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좋아질 것 같았다.
데생 수업이 있던 날 1단계 스케치를 마치고 선생님이 봐주겠다며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내가 앉았던 이젤 앞 의자에 선생님이 앉고 그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내가 앉았다. 선생님이 지우개와 연필을 들고 수정해주는 걸 봐야 했다. 근데 향이 너무 좋은 거다. 그래서 왠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속된 말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선생님 귀에 들릴 것 같았다. 선생님은 한동안 내 그림을 수정해주다가 뭔가 이상했는지 스케치하던 손을 멈추고,
“나한테 무슨 냄새나니?”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과장하듯 자신의 팔을 들어 킁킁 냄새 맡는 척을 했다. 요는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앉느냐는 거였다. 나는 당황하여 토끼 눈을 뜨고,
“아, 아뇨.”라고 손사래 치며 의자를 끌고 선생님 곁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잠시 후 다시 그림 수정을 해주시던 선생님께 용기를 내 물었다.
“선생님. 향수 뭐 쓰세요?”
여고생이 스물일곱 살 총각 선생님에게 향수 뭐 쓰는지를 물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었을 거다. 근데 선생님은 이렇다 할 표정 변화 없이,
“나 향수 안 쓰는데.”라고 대답했다. 멋쩍어진 나는 그게 어떤 거절 같단 느낌을 받았다. 수줍은 내 고백을 단호히 거절한 대답같았다.
또 서론이 길어졌다. 소설 속 문장 하나를 보면 내가 겪은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바람에 그만.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마스다 미리의 첫 소설집 ‘5년 전에 내가 잊어버린 것’이 오늘의 소설이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늘 소소한 에세이만 쓰던 그녀의 과감한 일탈 같은 소설이다. 그녀의 순수하고 담백한 만화로는 풀지 못한 어른스러운 로맨스를 읽자면 퇴근길 지하철보단 잠들기 전 이불속이 더 어울렸다.
고3 때 그 선생님한테 났던 향수(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향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쩌면 냄새는 이미지보다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난 향수 때문에 향수 뿌리는 모든 남자가 좋아질 만큼.
소설 속 문장:
가타오카가 어깨를 슬쩍 맞댔다. 그리운 향수 냄새가 났다.
가타오카를 좋아해서 나는 향수 바르는 남자까지 좋다고 생각했었다.
<마스다 미리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중에서>
오래전에 읽은 카피 관련 책에서 일본 카메라 광고 중에 ‘너를 찍기 위해 모두를 찍었다’라는 카피가 기억난다. 좋아하는 여학생의 독사진을 갖기 위해 반 전체를 일일이 찍어준 남학생이 주인공. 뭔가 그 마음이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면서 좋은 카피구나 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움직였으니까. 내가 건너 아는 한 남자도 좋아하는 여자와 영화를 보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회사 전 직원을 영화 관람이라는 대박 사건으로 감동시킨 사연도 있다. 한편으론 얼마나 소심한 남자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한 여자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쏟고 행복했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만 말이다.
완성 카피:
펜으로 가볍게 메모하는 작은 움직임에도 맡을 수 있는
그의 향수 냄새가 좋았다.
향수를 뿌리는 모든 남자까지 좋다고 생각할 만큼,
그 남자가 좋았다.
어떤 카피나 문장을 적을 땐 과거 내가 접했던 그 상황을 자주 상기시켜본다. 꼭 그런 경험이 없었다 할지라도 비슷한 상황에 나를 놓아보는 것이다. 최근 한 남자와 업무상 미팅에서 평소 맡아보지 못했던 향이 그에게서 나길래 좀 다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하는 움직임이라곤 고작 손을 움직여 펜으로 뭔가를 적는 것뿐이었는데 앞에 있는 나에게까지 향이 전달됐다. 향수를 많이 뿌려서 나는 냄새라기보다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봉우리가 톡톡 터지듯 발산되는 향이었다. 어쨌든 그 경험을 살려 맨 앞에 적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그려줄 때 의미 전달이 더 쉽기 때문이다. 두루뭉술하게 그려주기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려주는 것이다.
고3 때 짝사랑하던 그 미술 선생님을 결혼하고 2년쯤 지나서 명동 한복판에서 우연히 보았다. 나는 그쪽을 알아봤는데 그쪽은 나를 보지 못했고 선생님 옆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물론 내 옆에도 남편이 있었다. 서울에서 사람 많기로 유명한 그 장소에서 그를 맞닥뜨린 순간이라. 영화에서처럼 슬로모션까진 아니더라도 시간이 1, 2초 더디 가는 것 같긴 했다. 그런 그를 봤을 때 설렜느냐? 아니, 굉장히 덤덤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이상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