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소설 속 문장: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을 한 우편물들 사이로 분홍빛 봉투가 코를 내민 게 눈에 띄었다.
<김애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에서>
편지는 우편 소인도 찍히지 않고 보낸 사람 주소와 이름도 없었다. 봉투 위에 적힌 거라곤 ‘받는 사람’ 이름 한 줄 뿐이었다. ‘권도경 선생님 사모님께’. 그것도 이제 막 글을 뗀 아이가 쓴 것 같은 투박한 글씨로.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나오는 이 문장은 주인공이 받는 이 편지로 끝을 맺는다. 화자의 남편 권도경은 중학교 선생님으로 체험 학습에서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죽고 만다. 읽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시작이 어려웠지만 물고를 트고 나니 끝까지 단번에 읽혔다. 찡그린 미간이 펴지지 않은 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아팠다.
편지를 보낸 이는 물에 빠진 학생 권지용의 누나 권지은으로 갑작스런 마비로 오른쪽 몸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막 글을 뗀 것 같은 투박한 글씨였던 것. 자신의 동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게 된 선생님의 배우자에게 그녀는 어떤 편지를 남기고 싶었을까? 나는 이 짧은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특히 이 부분,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누나의 심정을 헤아릴 수도, 그런 그녀가 화자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 아이가 마지막에 잡은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었다고 생각하면 그 짧은 생이 조금은 위안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 손을 잡아 주려 몸을 던졌을 테니까.
편지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책 이야기가 길어졌다.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인가? 이메일 말고 손편지 말이다. 나는 일기는 이틀에 한번 꼴로 쓰는데 편지는 쓴 지 꽤 되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한 엄마가 짐 정리를 하다가 몇 해전 엄마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 내가 위로한답시고 썼던 여러 장의 편지가 나왔다며, 그걸 읽다가 한참을 울었다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실 나는 그런 편지를 썼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편지를 썼다. 친구, 가족을 불문하고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도.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남학생을 보았다. 그 애를 처음 본 순간 내가 쟤를 만나려고 여기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애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공중전화에서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어디서 그런 강단이 생겼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데…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을 거다. 그렇게 신호가 가고 그 애가 전화를 받았다. 분명히 그 애 목소리였다. 근데 이렇게 말했다.
“OO이 없는데요.”
전화를 건 내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런 전화를 자주 받는 게 분명했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자존심도 없지. 그렇게 거절을 당해 놓고 편지를 써 고백하다니. 집 주소는 모르니까 다음 날 학원에 좀 일찍 가서 그 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손편지 보기가 어려워진 요즘, 진짜 손편지가 온다면 소설 속 문장처럼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을 한 우편물들 사이로’ 눈에 딱 띄었을 거다. 아마도 누나 권지은은 이 편지가 꼭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녀, 권도경 선생님의 배우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분홍색 편지지를 골랐을지도 모른다. 다른 우편물 사이에 묻히면 안 되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니까.
완성 카피:
분홍 편지지는 반드시 그가 읽습니다
분홍빛 편지지는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의
우편물 사이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읽히지 않을 거란 불안감은 떨쳐버리세요
안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편지는 없다. 연애편지든 위문편지든 팬레터든 상대가 꼭 읽어줬음 하는 마음으로 쓴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지를 고를 때 좀 더 시선을 끌 수 있는 것으로 고르고 심지어는 직접 만들기도 한다. 편지지를 팔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꼭 읽을 거라는 말만큼 반가운 멘트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읽을 거’라고 확신을 주는 카피는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카피라이터가 상만 차리는 게 아니라 직접 떠먹여 줘야 한다. 소비자는 고민할 시간이 없을뿐더러 카피라이터는 고민할 여지를 남겨주지 않아야 한다. 딱딱하지 않은 일상어를 쓰면서도 얼마든지 강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가끔은 짤막짤막한 카피만 쓰는 게 아니라 긴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소설 중에도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 가독성이 높다고 한다. 편지는 우리에게 참 익숙하기도 하지만 한 번 멀리하면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다. 스마트폰 문자, 업무 이메일에서 잠시 벗어나 손편지를 써보자. 다시 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