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지독히도 안 잊히던 남자가 있었다. 지난한 과거 이별 이야기를 여기서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늘 소재로 쓰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이다. 그렇다고 거창할 것도 없고 그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그와는 3년쯤 연애했고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았다. 나는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쪽에선 계속 사인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아챌 수 없는 본인만 감지한 사인을. 합의하에 헤어진 게 아니라 그런지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바라건대 부디 남자든 여자든 일방적인 이별통보는 절대 하지 않길 바란다. 사랑은 둘이 한 건데 헤어지는 걸 왜 혼자 결정하는가? 남녀가 처음 만나서 알아가는데도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듯 헤어지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결정이라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 아닐까?
그렇게 헤어진 그 남자를 잊는 동안 가장 괴로웠던 것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그를 만날 때 들었던 음악 그가 나에게 공 CD에 직접 녹음해 들려줬던 음악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디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남자였기 때문에 생활 자체가 음악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음악에 문외한이던 나에게 국내외 수많은 락밴드 음악을 알려줬기에 연애하는 동안은 너무 행복했는데 헤어진 뒤에는 차라리 모르고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을 만큼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이런 기억은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음악은 이성에게 자신을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이 확실하다.
소설 속 문장:
이성에게 자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두 가지 방법은 하나는 변태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 잇’에 나오는 얘기다.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중에서>
그래서 이 문장에서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문장이다. 그 당시 내가 어느 정도였냐면 헤어진 지 1년이나 지났을 때였는데 친구와 함께 간 카페에서 그가 나에게 처음 들려줬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였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려 했지만 바보 같이 또 눈물이 흘렀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깟 음악 앞에서 무너지는 내가 너무 싫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카페 주인에게 조용히 다가가 음악을 좀 바꿔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조금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 그 카페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완전 다른 장르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러고 나니 점차 괜찮아졌다. 주문한 카페라테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친구에게 나가자고 말할 수도 없어 미친척하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카페 주인, 참 고맙다.
그 의도가 좋든 나쁘든 음악은 대상을 기억하게 만드는 탁월한 방법이다. 꼭 이런 내용이 아니더라도 어떤 장소에서 들었던 음악이 잊히지 않는다든지 어떤 음악이 흘렀던 장소에 함께 있던 사람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헤드폰이나 스피커를 팔고자 하는 카피를 적어보면 어떨까? 경험에서 우러나온 카피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카피는 없다.
완성 카피:
함께 듣는 것
사랑하는 그에게 당신을 기억하게 할
가장 탁월한 방법
함께 듣는다는 의미에서 이 카피는 헤드폰보단 스피커에 적합하겠다. 헤드라인은 바디 카피를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 카피가 진짜 카피 즉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바디 카피를 얼마큼 간략하고 집중할 수 있게, 공감할 수 있게 적느냐도 카피라이터의 감각이 따라줘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함께 음악을 듣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함께 듣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이나 노래를 삭제했다. 의미 전달은 듣는다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카피는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단 사실을 잊지 말자. 1차, 2차로 써 보고 반드시 지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다. 99년에 유행했던 가요를 들으면 당시 내가 이 음악을 처음 들었던 미용실, 입었던 옷, 만났던 사람이 모두 생생히 기억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음악을 빼놓지 않나 보다. 사실 앞서 말한 (이별통보) 경험은 다신 하고 싶지 않다. (이미 결혼했으니 그럴 일도 없지만)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무방비 상태로 그냥 들을 수밖에 없다. 들은 다음에 귀를 막아도 이미 흘러 들어간 음악은 머릿속에서 맴돌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길에서 샵에서 카페에서 무방비로 흐르는 음악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그와의 추억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