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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09. 2017

내가 팔고 싶은
상품의 카피를 쓰다가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내가 곁에 책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책에 집착한다는 건 가까운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기정사실이다. 그래서 유독 책 혹은 독서와 관련된 제품을 보면 사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딱히 지금 당장 필요가 없어도 말이다. 가령 북커버는 번잡스러워서 잘 쓰지도 않는데 보이면 일단 산다. 북커버를 제대로 씌운 채 독서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을 때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사람들이 보는 게 싫다고 생각하면서 사지만, 막상 씌우려고 하면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식이 된다. 최근에는 북커버가 아닌 북포켓(?)을 샀는데, 가방에 넣는 책 주머니로 책 한 권이 딱 들어갈 사이즈의 천 주머니에 볼펜 등을 꽂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린 것이다. 가방에서 책을 꺼낼 때마다 불편하니까 이건 꼭 필요하다! 생각하며 덜컥 주문했지만 마찬가지로 한 번인가 쓰고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느 가방 속에서 나를 언젠가 찾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숨죽인 채 잠들어 있겠지.


그 밖에도 펜을 빼놓을 수가 없다. 펜은 필기할 때보다 책에 밑줄 그을 때 더 많이 사용하는데 2006년이었나 당시 다니던 회사가 문구류와 관련된 회사여서 동료들과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짜다가 책에 끼워 놓을 수 있는 책갈피 같은 볼펜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볼펜심만 따로 보면 엄청 얇으니까 이것만 잘 감쌀 수 있는 디자인이면 되지 않을까? 동료들과 우리 이거 만들어서 팔면 대박 나겠다,라고 설레발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뭐하나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끝이다. 당시 그 아이디어는 조용히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몇 년이 흘러 내가 그린 볼펜과 똑같은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을 만나게 되었다. 이게 바로 깃털 볼펜. 이 물건을 처음 보고 아,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있었네 라고 생각해 왠지 뿌듯했지만 어쨌거나 결과에 미치지 못했으니 내가 진거나 다름없단 생각이 들었다.


자, 대놓고 이 제품을 팔기 위한 카피를 쓰려고 책을 뒤적거렸다. ‘아침의 첫 햇살’은 작년 초에 읽었던 소설로 공감 가는 문장이 유독 많아 밑줄 필사만 A4 4장 정도였다. 인상적인 점은 여자의 삶과 심리에 대해 쓰고 많은 공감을 낳은 이 소설이 남자 작가가 쓴 것이란 거였다. 지금 내 기억으론 누군가 이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용도 보지 않고 책을 주문해 읽었던 것 같다. 당연히 여자 작가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남자 작가여서 가장 큰 반전이었다는…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소설인데 너무 한국의 정서와 맞닿아 있어 이탈리아 남자가 한국 남자와 비슷하단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어머니, 시동생, 남편 할 것 없이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특히 ‘시’ 자 들어간 가족의 레퍼토리가 한국과 참 닮아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 소설이란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읽었다. 하루는 책을 읽다가 언니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당장 서점에 가서 ‘아침의 첫 햇살’을 사시오.” 긴 말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나보다 언니가 100% 공감할 게 뻔했으니까. 페이지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이다. 


소설 속 문장:

커피 잔을 내려놓고 책꽂이에서 책을 몇 권 집어 들었다. 책을 펼쳐 들고 한때 줄을 그어놓았던 문장들을 다시 접해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느꼈고 정말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 중에서>

이번에 팔고자 하는 볼펜은 책갈피처럼 책에 꽂아놓고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볼펜이다. 잉크를 콕 찍어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깃털 모양은 참 감성적이다. 나는 밑줄도 많이 긋고 책 모서리도 잘 접는 편이라 책이 깨끗하진 않다. 일부러 지저분하게 구기고 꺾어서 읽는다. 그래야 좀 더 내 책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때문인지 양장 책을 싫어한다. 표지에 날개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좋다. 다 읽은 뒤 너덜거리는 게 좋다. 어쨌거나 소설에 나온 문장처럼 밑줄 친 문장을 다시 읽을 때 참 기분이 묘해진다. 가끔 내가 이 문장에 왜 밑줄을 그었지? 싶은 것도 있다. 분명 밑줄도 그때 나의 심리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완성 카피:

밑줄을 다시 보면 그때가 읽혀요

과거 당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 궁금하다면

그때 읽었던 책의 밑줄을 살펴보세요

깃털처럼 얇은 볼펜이 지나간 자리에 그 답이 있습니다


밑줄을 다시 읽으면 그때가 읽혀요,라고 ‘읽혀요’를 두 번 쓰지 않고 ‘보면’과 ‘읽혀요’라고 달리 써줬다. 문장을 쓸 때 습관적으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유의어가 필요하다. 뜻은 비슷해도 다른 말로 써줘야 한다. 예를 들어 나도 자주 쓰는 ‘생각한다’라는 말의 경우 ‘생각한다’가 들어가는 부분에 ‘보다, 여기다, 믿다, 추정하다, 판단하다, 가정하다, 감정하다, 살피다, 이해하다, 판별하다, 의식하다’ 등으로 바꿔 넣는 것이다. 뜻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질뿐더러 이해하기도 쉽다. 


이번 카피에서는 볼펜이 가진 개성이자 습성도 언급하지만 밑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쓰고자 했다. 단순히 볼펜을 팔기 위함이 아니라 이 제품을 썼을 때 효과의 파장에 대해 더 고려한 카피를 쓰기 위해서다. 지겹도록 반복하지만 모든 카피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깃털 볼펜은 지금 어느 책에 꽂혀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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