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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27. 2017

얻어걸린 감정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매출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겠지만 가능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감정을 건드리는 카피를 쓰고자 한다. 매번 이런 카피로 이벤트나 기획전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상품이 매우 많고 다양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29CM(www.29cm.co.kr)만 해도 상품 수가 4만 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자주 사이트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상품과 카테고리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상품도 곳곳에 숨어 있다. 간혹 쉬어가는 의미로 이런 상품을 팔고자 하는 이벤트 페이지를 기획할 땐 괜히 손끝이 간질거리는 재미를 느끼곤 한다.


지금 소개하려는 스티커가 그런 경우다. 스티커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라벨지 같이 용도가 분명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딱히 어디에 쓰면 좋을지 퍼뜩 떠오르지 않는 스티커도 있다. 사실 이런 건 그냥 ‘예뻐서’ 사는 거다. 스티커의 컬러와 크기, 모양 등을 봤을 때 딱히 이걸 어디에 써야 할지 잘 모르겠는 스티커가 있다. 잘 모르는 게 맞다. 우린 이런 걸 그냥 예뻐서 사는 거니까. 이런 제품은 기분 전환용이다. 3,500원. 그리 비싸지도 않다. 이런 스티커 같은 걸 사면서 우리는 아주 잠시 행복해지는 거다. 이런 걸 왜 사?라고 하는 사람들, 분명히 있지만 우리는 안다. 이런 거 사면 기분이 말캉말캉해진다는 걸.


윤성희 작가의 소설집 ‘베개를 베다’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읽었다. 어느 날 주인공 ‘나’는 직장동료 최대리의 이상한(?) 취미를 듣게 된다. 그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는데 보이는 모든 사람의 수를 무작정 세는 게 아니라 매일 주제를 정해서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이를 테면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찾기로 한 날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만 세는 식이다.

소설 속 문장:
최대리가 내게 수첩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여자를 여덟 명 보았어요. 그제는 생수병을 손에 든 사람. 다섯 명이네요. 날은 더운데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구요. 제가 이상하게 보이죠?”
나는 최대리의 수첩을 만져보았다. 그러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참 쓸모없는 취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맞아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들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윤성희 ‘베개를 베다’ 중에서>


위의 밑줄 그은 소설 속 문장은 아무 쓸모없는 스티커를 살 때의 기분을 너무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정말 쓸데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이런 용도도 불분명한 스티커를 사는 일은. 그렇지만 아주 잠시 나는 행복해진다. 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말이다. 그게 꼭 나만 그러리란 법은 없다. 누군가는(아마도 이 스티커를 만든 사람이려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매번 강조하지만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공감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말하지만 모두에게 공감을 느끼게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이런 감정에 얻어걸릴지 모른다. 앞에서 말했듯 이번에는 매출엔 욕심 내지 않는 카피다.


완성 카피:
쓸데없는 스티커 
(메인 타이틀)
창피해 마세요,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이 쓸데없는 걸 사고 행복해한답니다. (서브 타이틀)


근데 사실 이런 스티커의 구성을 보면 그리 쓸데없지도 않다. (대놓고 쓸데없다고 해서 찔려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검은색 몰스킨 데일리 다이어리 겉표지에 노란색 도트 무늬를 만들기 위해 동그란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일 년 내내 쓰느라 좀 지루해진 다이어리를 산뜻하게 꾸며줬으니 아주 쓸데없다고 할 수만은 없겠다. 갖고 있다 보면 용도가 생긴다. 근데 일단 제품이 구매로 이어지기 위해선 그 잠깐의 행복한 기분을 건드려줘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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