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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03. 2017

불편했던 경험을 꺼내보자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불편했던 사소한 행동이나 감정은 딱히 누구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 감정이구나, 내가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화장을 잘 못하는 나는 그나마 타고난 피부가 봐줄 만한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균 1, 2만 원대의 토너와 로션을 바르고 선물 받거나 공짜로 얻은 게 아니라면 굳이 에센스까지 사서 바르진 않는다. 세안 후 토너를 화장솜에 묻혀서 좀 닦아내고 얼마 전 형부가 미국 출장에 다녀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샀다는 랑X 에센스를 이마와 양 볼에 떨어뜨려 톡톡 두드려 흡수시키는 정도가 기초화장의 전부다. 일주일에 한 번은 샘플로 얻은 영양크림과 또 샘플로 받은 수분크림을 바르고 잔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굉장히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마스크팩 호사를 부린다.  


나는 유독 화장품이나 속옷에 들이는 돈을 아까워하는 타입인데 이 모든 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어서인 것 같다. 구두, 가방, 옷 등은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가능하면 유행하는 스타일로 구비해 놓으려고 하는데 화장품 같은데 돈 쓰는 건 매우 아깝다.


서론이 길었는데, 여하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에 바르고 자는 이 수분크림 얘기를 하려는 거다. 내가 선물 받은 수분크림도 제형이 꽤 진득해서 한번 바르면 시럽을 뒤집어쓴 것처럼 꾸덕꾸덕하다. 이렇게 바르고 잠자리에 들 때면 베개에 묻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불면을 모르는 나는 머리가 베개에 닿았다 하면 잠들어서 조심한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에 머리카락이며 각종 섬유먼지가 잔뜩 붙어있어 과연 이 수분크림이 얼굴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 효과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잠들기 전이 아닌 시간에 따로 시간을 만들어 관리하기 어렵다. 그냥 바르고 자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 바르는 게 아니라 세안하면 수분 공급이 어느 정도 되는 워터팩을 보게 되었다. 해당 상품의 기획전에도 참여한 바 있어 좀 더 자세히 이 상품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진득한 수분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자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내게는 큰 매력 포인트였다. (스타일이 완전 다른 두 제품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하지 않겠다, 그건 각자의 피부 상태와 취향에 맡기자) 어쨌든 패딩워터팩은 물에 희석해서 세안만 해줘도 촉촉해지는 제품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한 가족, 그중 82년생 김지영이란 여자의 삶을 심플하게 쓴 경장 편 소설인데, 우여곡절이 많아 버라이어티 한 일대기라기보다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 같아서 무척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다. 이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김지영이 겪은 수분크림에 대한 일화를 읽고 이 역시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불편함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문장: 
1시가 넘어서야 수분 크림을 듬뿍 바르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얼굴에 두껍게 덮인 크림이 이불에 묻을까 봐 마음대로 뒤척이지도 못하고 꼿꼿하게 누워
눈만 껌뻑이다가 새벽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 결말이 없는 많은 꿈을 꾸었다.
참을 수 없게 피곤했고, 화장이 잘 먹지 않았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 믿는다.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에게 내가 알게 된 패딩워터팩은 꽤 관심 가는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한 경험을 살려 카피를 써보는 건 어떨까?


완성 카피:
어젯밤 무엇 때문에 베개를 적셨나요?
(메인 타이틀)
두껍게 바른 수분크림이 베개에 묻을까
꼿꼿한 자세로 잠을 잔 적이 있다면
패팅 워터팩으로 마음껏 뒤척이다 잠드세요.
축축한 베개는 없고 촉촉한 얼굴만 남습니다.
(서브 타이틀)

불편한 감정이나 행동은 특히 더 강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이런 감정은 사람들이 잘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어서 누군가 툭 건드려주면 우르르하고 쏟아지게 돼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지만 카피를 쓸 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글쓴이가 자신을 마음껏 내려놓고 자세를 낮출수록 독자는 늘어난다. 창피하다고 생각할 것 없다. 나를 내려놓고 까발리는 일,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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