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극장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창민과 헤어지고 3개월이 흘렀다. 창민을 잊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생활하는 게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가장 힘든 건 금요일 밤과 토요일 오후였다. 일요일은 차라리 혼자인 게 다행이다 싶을 만큼 홀가분했다. 하지만 금요일 밤과 토요일을 아무런 일 없이 홀로 지내야 한다는 게 쓸쓸하고 외로웠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한계가 느껴졌다. 마땅히 약속도 없지만 퇴근을 서두른 목요일 저녁 지하철에서 우연히 보게 된 페이스북 광고는 그런 나의 외로움과 호기심을 깨우는 데 한 몫 했다.


‘혼자 가면 둘이 나옵니다’


광고 내용은 이랬다. 회비 3만원을 낸 뒤 원하는 장소의 극장을 선택하고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그곳에 가 영화를 본다. 옆자리에는 그날 당신과 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찾아가게 된다. 회비로 낸 3만원에 영화 티켓 값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손해 볼 장사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과연 멀쩡한 사람이 이런 터무니 없는 짓에 돈을 3만원이나 지불할까? 라고 의심이 쌓여갈 즈음 댓글을 보니 실제로 이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괜찮은 남자가 옆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봤고 극장을 나와 함께 저녁을 먹고 지금은 연인이 되었다는 후기가 있었다. 어차피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시도 해볼까? 평소 모험을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이 광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는 가장 보고 싶었던 ‘남과 여’로 선택하고 극장은 창민과 자주 가던 신촌 CGV로 정했다. 일단 같은 영화를 본다는 건 취향이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철저히 내가 보고 싶은 영화로 골랐다. ‘남과 여’ 같은 경우 대부분의 남자들이 싫어하는 영화이므로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 남자는 어느 정도의 감수성은 담보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나의 추측이었다.

창민은 이런 영화를 절대 보지 않았다. 나는 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VOD로 챙겨봤고 창민과는 창민이 보고 싶은 영화 위주로 봤다. 모든 게 후회되는 건 아니지만 다음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 다면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으면 하고 바랐다. 시간은 오후 5시. 영화를 보고 나와 마음에 들면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처럼 설레는 기분이 든 나는 가장 좋아하는 도트무늬 원피스를 꺼내 입고 발목이 드러나는 앵클부츠를 신었다. 머리는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연한 화장으로 강하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순간순간 내가 뭐 하는 짓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처럼의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준비를 서둘렀다.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극장은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극장 온지도 오래됐다 생각하며 뚜벅뚜벅 자리를 찾아갔다. 옆자리는 당연히 비어있었다. 누가 오긴 하는 걸까. 아무런 확신도 없이 긴장한 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곧이어 극장은 더 어두워졌고 영화가 시작됐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옆자리를 의식했다. 눈은 정면을 응시했지만 의식은 빈자리에 집중됐다. 그때 누군가 몸을 한껏 움츠린 채 다가오는 게 느껴진 나는 드디어 왔구나, 정말 왔어, 라고 속으로 외쳤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 놓인 팔걸이는 내려진 채 그대로였다. 화면이 밝아졌을 때 힐끗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스타일을 확인했다. 차마 위로 올려다 보긴 힘들어 아래 부분만 봤는데 청바지에 적당한 품과 갈색 로퍼가 눈에 띄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다. 감독 특유의 감성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중간쯤엔 영화에 흠뻑 빠져 옆자리 남자는 의식도 못했다. 드디어 영화의 끝을 알리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에 은은한 불빛이 들어왔다. 소개팅에 나간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옆자리 남자를 바라봤을 때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는 창민의 친구 성국이었다. 성국 또한 나를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와… 너희를 인연이라고 해야 되냐 인연이 아니라고 해야 되냐?”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원래 창민이가 나오기로 한 자리였어.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겼다 길래 한가한 내가 나왔지.

창민이가 나오려던 자리였으니 인연인가, 아님 어쨌든 못 나오게 됐으니 결국 인연이 아닌 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성국이 허허거렸다.
어이가 없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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