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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20. 2017

스마트폰, 내 손 안의 극장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들뜬 마음으로 보러 갔던 영화가, 타이틀이 나올 때에는 감동을 느꼈지만, 상영 시간이 지나면서 ‘어?’ 하고 점점 지루해지며 ‘아니, 앞으로 재미있어질 거야’, ‘원래 잘 만드는 감독이잖아’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반전을 기대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자꾸 눈에 들어오는 듯한 감각이랄까. 
<이사카 고타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읽다가>



영화보단 책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를 등한시하게 된 이유는 읽을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요즘 ‘비밀의 숲’이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영화 ‘덩케르크’는 봤어? 이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봐야지,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다짐은 하는데 그거 볼 시간에 이 책도 읽어야 하는데, 저 책도 읽고 싶은데, 하고 넘기게 된다. 허기사 다 핑계일 뿐이다. 책도 출퇴근 시간 지하철이 아니면 잘 읽지 못한다. 어쩌면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내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왠지 잠이 오지 않던 평일 밤,
영화 앱을 켰다


그래서 그 ‘내 손 안의 극장’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나 VOD를 보는 앱을 깔아만 놓고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나는 낯설지만 어쨌든 내 휴대폰에 깔려 있는 그 앱을 켰다. 일단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리미어관 30일 이용권을 구매했다. 이렇게 하면 프리미어관에 있는 해외, 국내 영화는 물론 미드, 일드 등을 볼 수 있단다. 꽤 최신작도 있고 전부터 보고 싶어 찜 해놨던 영화도 있어 괜히 반가웠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를 볼 때도 호감 가는 스타일이 거의 정해져 있다. 우선 말이 많고 정적이며 서사가 중요한 것보다 단 기간, 즉 하루나 몇 시간의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사극 같은 시대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해력이 떨어진다. 요즘의 이야기 그리고 더 좁은 의미의 개인의 이야기가 펼쳐진 영화를 좋아한다. 옴니버스에도 매력을 느낀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일단 말이 많고 한 장면에서 꽤 오랜 시간 컷을 유지하며 대부분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사소한 이야기들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구입한 이용권으로 볼 수 있는 프리미어관에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이 두 편이나 올라와 있어서 언제 볼지 때를 노리고 있다.

illust by 이영채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는 친언니에게 3시간 정도 아이를 맡기고 본 ‘덩케르크’이다.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그것도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게 들어서 몇 주전부터 벼르고 벼르다 봤는데 역시 좋았다. 리뷰글 쓰는 데가 아니니까 영화평은 생략. 꼭 하고 싶은 말은 아이맥스로 보라는 것. 지난주 수요일에는 평일이지만 왠지 그냥 잠들기 싫은 밤이었다. 그렇다고 머리 쓰며 책 읽기도 싫어서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베개를 두툼하게 쌓은 다음 예의 그 영화 앱을 켰다. 유일하게 보고 싶은 영화가 딱 하나 떠올랐는데 검색해 보니 안타깝게도 내가 결제한 프리미어관엔 없었다. 그래서 큰 맘먹고 단편 결제를 한 번 더 한 다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제목은 ‘엘르’ 이자벨 위페르가 주인공 미셸 역을 맡았는데 보는 내내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지만 1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영화였다. 9,900원 내고 봤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토닥여 재운 뒤 불 꺼진 방에서 이어폰 꽂고 스마트폰으로 영화 보는 매력에 옷자락을 조금씩 적시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보고 싶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움


책을 읽을 때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장면을 그리며 상상하기 마련이다. 화자의 속마음을 문자로 읽을 수 있는 책과 영화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영화는 눈에 보이는 장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의 마음을 추측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캡처해 놓거나 화면을 잠깐 멈추고 대사를 메모해 놓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떨칠 수 없는 나의 글자 욕심. 전에 시나리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단편 영화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하면서 다짐한 게 있었다. 다시는 그 어떤 영화를 보고도 욕(?)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어느 영화 하나 쉽게 쓰이고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만들기 어려워서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수업시간에 시나리오 작가인 강사가 말해주길 일단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앞뒤 젤 것 없이 박수를 쳐주라, 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왜냐하면 영화가 만들어져도 극장에 걸리기가 너무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 수업시간 과제로 쓴 시나리오 한 편도 이렇게 힘든데 실제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틀 째 잠들기 전 틈틈이 보고 있지만 아직도 다 보지 못한 영화가 있다. 토니 에드만. 보다가 졸려서 조금씩 끊어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스마트폰으로 영화 보는 장점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읽은 데까지 가름끈을 끼워 놓듯 멈춘 버튼을 누른다. 언제든 어디서나 내가 보고 싶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움. ‘덩케르크’처럼 꼭 극장 가서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 다음 영화도 책처럼 볼 수 있다. 오늘 밤은 토니 에드만 01:56:40 쪽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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