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ug 13. 2017

당신의 무기는 성실입니까?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올리브 오일이 섞인, 냄새도 이상한 데다 거품도 잘 안 나는, 그래도 피부에는 좋다는 바디 샴푸로 몸을 씻는다. 그리고 거품은 잘 나지만 쓰기에는 껄끄러운, 흑설탕이 섞여 있어 피부의 저항력에 좋다는 비누로 세수를 하고, 해초 성분이 섞여 있고, 거품도 잘 나고 상큼해서 마음에 드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나와 목욕 가운을 걸치고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에쿠니 가오리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를 읽다가>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한 게 아니라 졸업하고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한 건 미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게 시작이었다. 졸업도 간신히 한 나는 내 전공(가구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게 정확히 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로 덜렁 나자빠졌다. 그냥 한동안 집에서 좀 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는데 이런 나를 그냥 두고 보지 않던 언니가 미대 나왔으니까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별다른 반발심 없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교차로를 집어 온 나는 거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미술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뽑고 있다는 광고를 보았다. 미술 유치원이란 게 있는지도 처음 알았던 나는 면접을 보았고 덜컥 합격했다. 원장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합격시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냥 보조였다. 베테랑 교사는 따로 있었다. 어쨌거나 정말 얼떨결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미술 유치원이란 곳에 출근하였다.


내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차량’을 나가는 것이다. 노란색 승합차 뒷좌석에 탄 나는 그 일대를 돌며 아이들을 하나씩 태운다. 처음 보는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를 번쩍 안아 차에 태운다. 그리 잘 웃는 타입이 아닌데 엄마들 앞에서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차량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이들과 간단한 율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것도 진짜 적응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 수업은 체계적이라기보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지금은 이렇게 껄렁껄렁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꽤 열심히 다녔다. 지각도 안 하고 퇴근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했다. 내가 제대로 유아교육을 전공한 선생이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일이라도 최대한 잘 하고 싶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일했을 때 웬일인지 늦게까지 남아 있던 원장이 나를 불렀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이야기의 시작이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그날 원장의 한마디가 있다.


“선생님은 성실한 게 무기야?”


할 말을 잃은 나는 10초 정도 멍하니 원장을 바라봤다.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빨리 두뇌를 회전시켜야 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더니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주겠다는 듯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성실한 거 빼고는 내세울 게 없느냐고.”


미대를 나왔다고 하니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원장은 (전공이 가구 디자인인걸요) 성실히 아이들을 돌보는 것 같긴 하나 뭔가 수업에선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성실한 게 무기냐니. 성실한 게 무기냐니. 나는 그날 원장과 면담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이 말을 몇 번이나 되 내었는지 모른다. 아마 수백 번이었을 거다. 지금도 생생한 이 대사가 지워지지 않는 걸 보면 적잖은 충격인 건 사실이었다. 

illust by 이영채

성실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열심히 주어진 일 잘 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반항할 줄 모르니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야근하고 잔업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나는 그렇게 오전 8시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남아 있어도 군소리 한번 한적 없었다. 그랬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칭찬할 줄 알았던 사람에게 성실한 게 무기냐는, 다소 질타 섞인 말을 들었다. (원장은 그쯤 돼서 나를 자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은 첫 사회생활에서 들었던 가장 쓴소리였다. 성실하게 일한 사람에게 그것 말곤 없느냐는 말을 들었으니 더 비비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성실한 사람에겐 어떤 무기가 필요했을까?


그렇게 15년 이상이 흘렀다. 성실하기만 한 건 분명 좋은 자질이라 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본인의 자질이 부족하단 걸 아는 사람은 일단 성실하고 봐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이 성실하지도 못한 채 이것저것 시도를 한다면 그게 더 위험한 것 아닌가. 더군다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건 내가 두 달 동안 지켜본 그 원장은 교육자의 기본은커녕 아이들을 가르칠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아이들의 교육보다 골프에서 ‘머리 올리는 게’ 더 중대한 문제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내 성실을 지적당했으니 억울하고 분할 수밖에. 당시 뭘 모르는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분명히 약자였다. 그리고 남들보다 빨리 그런 일을 겪어봤기에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말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므로 절대로 그런 강자는 되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