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한국에서 엄마로 사는 일은 괴롭다. 과열 경쟁을 조장하는 사교육에 반대한다면서도 아이는 수학 학원에 집어넣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아이는 군대에 가라고 한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타협의 기술만 늘어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끄럽다.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다가>
나이가 서른 중반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도 아주 가끔씩 꾸는 무서운 꿈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나’이다. 이런 종류의 꿈을 꿀 때마다 깬 다음 그것이 꿈인 걸 알았을 때의 그 안도감과 행복감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수학을 정말 지지리도 못했다. 수포자였던 건 물론이거니와 원래부터 산수를 두려워했던 애였다. 수학 못하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한 지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악몽을 꾸겠는가. 내가 이렇게 수학에 대한 공포가 생긴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지금도 꾸는 무서운 꿈은 그 경험의 반복이기도 하다.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악몽은 계속됐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시절. 늘 수학 시간을 두려워했던 내가 정말 정말 싫어했던 건 칠판에 나와서 문제를 푸는 거였다. 선생님의 그런 낌새(시킬 것 같은)가 보일 때마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수학 선생님이 문제풀이를 지목한 4명에 내가 포함되었다. 그 수업이 4교시였는데 수업이 거의 끝날 때쯤 딱 걸린 거였다. 선생님은 칠판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문제 네 개를 적었다. 한 사람씩 문제를 골라 풀면 되는 거였는데, 아는 게 없던 나는 우물쭈물하며 제일 마지막에 다른 아이들이 문제를 다 선택한 뒤에 남은 문제 하나 앞에 섰다. 풀어보겠다는 제스처는 취해야 했으므로 흰색 몽당 분필을 집었다. 검은 건 칠판이고 흰 건 숫자인데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되는 건지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괜히 문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가 아이들이 하는 걸 보고 숫자와 기호를 적었다가 칠판지우개로 지우는 걸 반복하는 등 시간을 때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스럽게 문제를 푼 다른 아이들이 하나 둘 분필을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중 문제를 가장 먼저 푼 아이는 우리 반 수학 반장이었다. 뚱뚱한 남자애였는데 안경을 꼈고, 머리가 크고 머리카락이 숱도 엄청 많았다. 수학 반장이니 오죽 문제가 쉬웠겠는가? 자신만만한 그 애의 표정과 달리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되었고 누가 됐든 무엇이 됐든 나를 여기서 구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이윽고 4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만 들어가라고 말했다.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혼난 기억은 없는데 결정적으로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아까 그 수학 반장이었다.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니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자리를 이동하는 사이 창피하고 쪽팔림에 어깨를 땅까지 떨어뜨리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그 수학 반장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이것도 못 푸냐…”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잊히지 않고 그 애의 말이 정확히 기억난다. 물론 뉘앙스까지도. 아마 그 말 뒤엔 “쯧쯧”까지 포함되었을 거다. 고개를 들어 표정을 보진 못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의 얼굴을 봤다면 나의 악몽에 그 애의 얼굴이 계속 나왔을 것이다.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툭하면 그 날짜의 번호에 맞게 아이들에게 문제 풀이를 시키는 반면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은 정말 다행이게도 시키지 않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나와서 풀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물론 엎드려 잠을 자도 뭐라 꾸중하는 법이 없었다. 거기다 웃기고 성격까지 좋아서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 수학 시간을 두려움 없이 보냈음에도 중학교 때의 수학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으면 아직도 ‘수학 공포’ 꿈을 꾼다. 성인이 돼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더이상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수학만큼 쿨하게 포기했던 것도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한 과목은 당연히 수학이었다. 모의고사 수학 시험 시간이면 아무런 숫자로 OMR 카드에 표시를 하고 다음 시간을 위해 엎드려 잤다. 그럼 10점에서 20점 정도가 나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죽었다 깨어 나도 이건 잘할 수 없을 거라고 단념한 게 수학이다. 돌이켜 보면 수학만큼 쿨하게 포기했던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공부를 좀 해볼까?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인 것이다.(결론은 예체능과였지만) 언어를 다루는 머리의 3분의 1만이라도 숫자를 써먹을 줄 알았더라면… 같은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아예 희망조차 없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근데 요즘 들어 슬슬 걱정이 된다.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수학 문제 좀 풀어달라고 했을 때 옛날처럼 머리가 하얘지면 어떡하나, 그게 중학교 수준은 고사하고 초등학교 문제에서 막히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아이가 나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수학을 잘 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