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l 31. 2017

절박할 때 듣는 수업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도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 절박하다는 것이었다. 
<웬디 웰치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을 읽다가>



일주일에 한 번, 총 5회에 걸쳐 듣는 소설 쓰기 수업이 한 번 남았다. 다음 주 마지막 수업 시간에 별일이 없어 빠지지 않는다면 여태껏 들었던 여러 글쓰기 수업 중 최초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은 수업이 될 것이다. (꼭 한 두 번씩은 땡땡이를 쳤던 것 같다) 어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이번 수업은 왜 단  빠지지 않았을까, 빠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결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수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요한 수업이란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은 작게는 조사 사용부터 내가 습관적으로 쓰는 말투까지 꼼꼼히 집어주었다) 사실 여러 글쓰기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늘 합평(수업 듣는 학생들이 각자 쓴 글을 서로 읽고 비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평소엔 잘 쓰다가도 합평을 목적으로 쓰는 거라면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비평 받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수업은 따로 합평이라 명하지 않고 그냥 과제, 그것마저도 안 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사실 내가 글을 안 써오고 수업을 들어도, 다른 이의 글에 대해 선생님이 지적해주는 것만 이해하고 알아들어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난 꼬박꼬박 과제를 했고 쓴소리 단소리 모두 들었다)


내 의견을 말하고
주의 깊게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방식은 수업 시간 전에 미리 정해준 단편 소설을 읽어오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과제 확인으로 넘어가는 패턴이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긴 하지만 내용을 분석하며 읽는 스타일은 아니라 막상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머릿속이 늘 하얘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선 나조차도 나 자신을 보고 놀랄 만큼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물론 수강 인원이 열명 안팎이고 자유롭게 말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편한 마음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 부분은 말하고 넘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내 의견을 말한다는 것, 그리고 주의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동기였던 것 같다.


한편으론 내가 그만큼 간절해졌다는 걸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니면서 퇴근 후 뭔가를 배우러 다닌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거나 간절하지 않으면 힘들다. 이로 인해 뭔가 꼭 변하고 얻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도 절실하긴 했지만 워킹맘이 되고 보니 이런 기회가 흔치 않고 내가 언제나 듣고 싶다고 해서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독하게 참여했나 보다. 

illust by 이영채


무엇보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선생님은 물론 수강생들의 직설이 나중에 글 쓰는데 많은 조력이 되었다. 첫 시간에 낸 과제로 생각지 못한 과한 칭찬을 들었던 나는 두 번째 과제에선 어이없는 사소한 실수(?)들로 꾸중 아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칭찬받을 거라 생각했던 터라 더 속상했다) 더 가르칠 게 없다는 수강생 두 명에 왜 내가 포함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다. 역시 자만은 금물. 선생님이 세심하게 첨삭해준 프린트를 받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세상에 숨은 고수는 많다


이번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세상에 숨어 있는 고수는 참 많다는 걸 느꼈다. 책도 한두 권 내고 글 잘 쓴다는 칭찬만 들어 우쭐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런 숨은 고수들을 만나고 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사실 강의를 듣고 뭔가 후련해졌다고만 하면 거짓말이다. 반대로 다시 막막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더 잘 써야만 하나… 꼭 등단이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소설을 써서 미련 없이 공모해 보고 싶다. 이미 몇 차례 공모전 낙방은 있었지만, 소설 쓰는 백영옥 작가는 공모전에서 100번도 넘게 떨어졌다고 하지 않던가. 그저 한번 써서 냈는데 덜컥 당선이 된 박완서 작가처럼은 못되더라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늘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분, 어쩌면 관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