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학원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그 건물을 찾아간 내 발걸음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뭔가에 의해서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왼발 오른발 움직여 5층짜리 하늘색 건물 앞에 우뚝 섰다. 학원은 건물 3층에 있었고 전봇대에 붙어 있던 광고지와 똑 같은 간판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기고 있었다. 수면학원. 제대로 내용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핏 보기엔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을 위한 학원쯤이라 생각할 것이다. 워낙 잠이 많은 나는 수면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와 그자리에 서서 찬찬히 내용을 모두 읽어보았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광고지의 내용은 어디서나 잠을 잘 잘 수 있는, 즉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 자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정말? 정말 그런 걸 가르친다고? 그런데 반가운 이 기분은 뭘까? 나는 손가락 크기로 잘라 놓은 전화번호를 슬쩍 찢어 주머니에 넣었다. 의심이 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장난이 아닐까 의심하고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로 했다.


“정말 서서 자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매우 상냥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졸음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불친절한 것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측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달까. 비교적 늦지 않게 퇴근하는 나는 초저녁잠이 많아 지하철에서 늘 잠이 쏟아졌다. 6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는 삼각지역은 늘 사람이 적당히 붐벼 자리에 앉을 수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는 항상 책을 꺼내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10분 이상을 서서 잔 적도 더러 있다. 그러다 무릎에 힘이 빠져 발이 꺾이는 바람에 잠에서 화들짝 깨는데, 창피한 건 물론이고 쏟아지는 잠 하나 참지 못하는 내 자신에 화가 나고 짜증이 일었다. 그렇게 잠을 쫓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사서 타기도 하고 완전 차가운 캔콜라를 사서 지하철을 타보기도 했지만 꾸벅꾸벅 졸다 그만 커피를 쏟아 그 칸이 온통 커피 향으로 가득했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게 잠을 떨쳐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매우 상냥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졸음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불친절한 것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측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달까. 비교적 늦지 않게 퇴근하는 나는 초저녁잠이 많아 지하철에서 늘 잠이 쏟아졌다. 6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는 삼각지역은 늘 사람이 적당히 붐벼 자리에 앉을 수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는 항상 책을 꺼내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10분 이상을 서서 잔 적도 더러 있다. 그러다 무릎에 힘이 빠져 발이 꺾이는 바람에 잠에서 화들짝 깨는데, 창피한 건 물론이고 쏟아지는 잠 하나 참지 못하는 내 자신에 화가 나고 짜증이 일었다. 그렇게 잠을 쫓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사서 타기도 하고 완전 차가운 캔콜라를 사서 지하철을 타보기도 했지만 꾸벅꾸벅 졸다 그만 커피를 쏟아 그 칸이 온통 커피 향으로 가득했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게 잠을 떨쳐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와 통화를 한 것 같은 직원이 데스크에 앉아 정면을 바라 보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가 섰지만 그는 눈을 뜨고 날 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는 데스크를 똑똑 하고 두드렸다. 그제야 작은 미동과 함께 살짝 놀란 직원은 ‘어서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니까 자고 있는 거였다. 눈을 뜨고. 꽤 고수다운 수법이었다. 전혀 자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곧이어 나는 직원에게 수강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은 잠이 가득한 목소리로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작성해 달라고 말했고 수강료는 5만원이라고 했다. 카드를 건네며 묻지도 않았는데 ‘일시불이요’라고 말했다.


업무시간에 들키지 않고 자는 법이라… 꽤나 구미가 당기는 수업이었다. 일단은 퇴근시간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초저녁 잠 때문에 온 것이니 일단 오늘 수업을 듣겠다고 말했다.
수업은 2시간 코스였는데 눈을 감고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는 과정과 잠에 빠져들어도 다리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일정한 힘을 유지하는 근력을 키우는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잠을 자고 있지만 뇌의 일부는 자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뇌수면 요법이 가장 힘들었지만 유용했다. 뇌의 전부가 자는 게 아니라 수면 중에도 타인이 하는 대화가 들렸다. 그래서 옆으로 누가 다가오면 적당한 타이밍에 피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5만원이 아깝지 않았다.
그날 이후 버스에서 서서 자는 법과 직장에서 티 나지 않게 조는 방법도 차례로 들었다. 수강료는 직장에서 조는 법이 가장 쌨다. 그리고 하루 코스로 끝나지 않고 3일을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현대인은 잠이 부족합니다. 봐야 할 게 너무 많고 가야 할 곳이 너무 많거든요. 어쨌거나 우리는 이동하면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수면의 양을 채워야 합니다.”


그날 이후 나는 지하철에서 사람이 많건 적건 서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잠에 좀 깊게 빠질지라도 다리가 풀리지 않았다. 팁 한가지를 주자면 차창에 기대서 자는 건 금물이다. 손잡이도 잡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에 의존하면 다리는 풀리게 돼 있다. 두 다리로 중심을 제대로 잡고 팔은 될 수 있으면 팔짱을 낀다. 고개는 정면이 아닌 45도 아래로 내리고 편하게 긴장을 푼다. 삼각지 역에서 범계 역까지 40분. 나는 마치 2시간 긴 잠을 자고 난 것처럼 몸이 개운해져서 하차할 수 있었다. 출퇴근 시 지하철에서도 충분히 잠을 자서 그런지 때로는 졸리지 않아 퇴근시간에도 맑은 기분으로 책을 읽으며 집에 갈 수 있었다. 간혹 주변을 둘러보다가 누군가 선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이면 슬쩍 다가가 말해주고 싶다.


“학원을 다니세요. 서서도 얼마든지 잘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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