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한잔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집에 오게 하는 방법으로는 이게 가장 좋았다. 매번 비용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했다.

대한통운의 택배기사는 30대 중반쯤으로 왜소한 체형이었는데 지난번 고양이 모래 4박스를 주문해 놓고 굉장히 미안해지기도 했다. 낑낑대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3층까지 올라왔을 그를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가 고양이 관련 물품을 주문하는 사이트의 택배사가 대한통운이라는 걸 안 뒤 고양이 모래는 늘 한 박스씩 주문한다. 그는 제법 상냥했다. 고양이 모래 4박스를 주문한 날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프로다웠다. 반면 씨제이 택배의 택배기사는 매우 신경질적인 남자다. 그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을 쾅쾅 두 번 치고는 “택배요!”라고 큰 소리로 외친 뒤 내가 나와서 물건을 받기도 전에 사라졌다. 작은 상자는 흔들어보고 깨지지 않을 것 같으면 문 앞에 툭 던지기도 했다. 나는 외출하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늘 집에 있는데도 단 한 번도 나에게 직접 물건을 건네준 적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물건을 놓고 사라지는 그를 딱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우연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인터폰을 켜 현관을 살펴봤을 때였다. 17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굴에는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 택배 회사 조끼 안으로 민소매 차림이었다. 그 뒤로는 그가 여드름 피부 때문에 사람과 마주치길 꺼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쿠팡맨은 다 알다시피 가장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한 택배원이다. 반드시 유니폼을 갖춰 입고 모자까지 착용한 그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물건을 건넬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았고 날씨가 좋습니다, 라는 멘트라도 하나씩 꼭 날려주곤 했다. 나는 그에게 택배를 받을 때마다 은근히 그의 다른 멘트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저번 주에는 자주 봐서 정이 들 것 같다는 농담을 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멘트가 희롱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의도적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물건을 주문한 나로서는 그의 그런 말이 설레고 기다려졌다. 하지만 그의 멘트는 어딘가 모르게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다.


이 모든 택배원들은 하나 택배의 택배기사에 비하면 평범한 편이었다.

한 번은 점심을 먹고 믹스 커피 한 잔을 타 거실 소파에 막 앉으려던 참이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 인터폰을 확인하니 하나 택배 택배기사였다. 어쩔 수 없이 머그잔을 든 채로 현관문을 열고 물건을 받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커피 향이 좋네요.”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쿠팡맨처럼 그냥 인사치레였던 걸까 고민한 나는 한번 더 물건을 주문해 그를 집으로 오게 만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 반 하나 택배가 우리 동네에 도착할 때쯤 됐을 때 커피 한잔을 진하게 타 거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몇 시쯤 어떤 택배 차가 동네에 도착하는지 파악이 된다. 이내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인터폰으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에도 머그잔을 든 채 현관문을 연 나는 의도적으로 커피 향을 풍기며 물건을 받아 들었다.
“커피 향이 참 좋네요.”
그는 지난번처럼 커피 향이 좋다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잠시 바라봤다. 이윽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저도 한잔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말했다. 생각지 못한 그의 질문에 잠시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했다. 우리 집 고양이 네로가 야옹, 하며 낯선 손님을 맞이했다. 뜨겁게 탄 믹스커피 한잔을 그에게 건넸다. 조금은 안절부절,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친 채 불안한 듯 앉아 있던 그가 머그잔을 받았다.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쥔 그는 이내 호로록 커피를 마셨다.
비 내리는 오후 택배 기사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될 줄은 꿈에 몰랐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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