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얼마 전부터 아내의 신경질이 부쩍 잦아졌다. 목소리도 하이 톤으로 올라가는 날이 많았고 설거지 그릇 마찰음도 점점 박력 넘치게 변해갔다. 아랫입술이 통째로 윗입술 밑으로 감춰지는 날들도 늘어갔다.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를 읽다가>
연애를 오래 했거나 결혼한 사람이라면 가끔 상대(혹은 배우자)가 나와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특별히 긴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한 건 아니지만 문득 이런 사실이 눈 앞에 보일 때면 과연 내가 이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사소한 의문점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여행을 좋아한다, 싫어한다) 취미(책을 좋아한다, 게임을 좋아한다)처럼 큰 틀의 것이 아니라 미미한 것에서 발견되곤 했으니,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나는 설거지를 할 때 수도꼭지를 샤워기처럼 물이 여러 줄기로 나오게 하지 않고 한 줄기로 나오게끔 해서 그릇을 헹군다. 보통 주방 수도에 버튼으로 이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하게 돼 있다. 내가 그 옵션으로 선택해 설거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 물이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 근데 함께 사는 남자는 나와 반대로 샤워기처럼 물줄기를 선택해 설거지를 하더란 말이다. 진짜 별거 아니지만 우리 둘의 그 차이를 발견했을 땐 사실 우린 굉장히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설거지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나는 뜨거운 물로 헹구지 않는다. 일단 반드시 고무장갑을 끼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손이 뜨거워지는 게 싫다. 그리고 뭔가 낭비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손이 시리지 않는 한은 찬물로 설거지를 한다. 반면 그는 (당연히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반드시 뜨거운 물로 수도꼭지를 한껏 돌려놓은 다음 그릇을 헹군다. 다 헹군 그릇을 선반에 정리하는 것만 봐도 우리 둘이 참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되는대로 마구 쌓아 놓기 바쁜데 그는 차곡차곡 크기 별로 접시는 접시대로 밥그릇 국그릇 따로따로 정리하면서 선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러니까 한 번 하면 되게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자주 안 하는 게 탈이다)
사실 우린 굉장히 다른 사람일지 몰라
청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빨래를 갤 때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나는 빨래를 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대충 갠다. (가급적 빨래는 개고 싶지 않다. 어차피 꺼내면 펼쳐서 입을 걸 그냥 서랍에 처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특히 속옷은 작아서 주름이 가도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두 번 접어서 거의 던지듯 넣는다. 하지만 그는 속옷 하나를 개도 어찌나 꼼꼼하게 예쁘게(?) 개는지 누가 보면 그가 갠 빨래를 여자인 내가, 내가 갠 빨래는 남자인 그가 갠 줄 알 것이다. 양말도 다르지 않다. 나는 양말 바구니에 몽땅 때려 넣고 신을 때 짝을 찾아서 신었으면 하지만 그는 반드시 꼼꼼하게 짝을 맞춰 공처럼 끼워서 갠다.
집안일 외에도 우리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맞벌이인 우린 대부분 따로 출근하지만 어쩌다 간혹 함께 출근하는 날이 있다. 직장이 같아서 지하철 승강장의 위치나 갈아타는 지점이 같을 법도 한데 너무 다른 것이다. 나는 바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그는 멀더라도 굳이 사람이 많이 없는 위치(지하철의 맨 앞이나 뒤)까지 간다. 내가 볼 때 굉장히 비 효율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가 봤을 땐 내가 이상해 보였겠지. 한 번은 내가 뭐 하러 거기까지 가느냐, 시간도 없는데, 여기서 타면 지하철을 바로 갈아탈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지하철을 어디서 갈아탈 것인지 길바닥에서 싸울 수도 없고 해서 일단 그의 의견에 따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일 아닌가. 그래서 그는 사람이 많은 지하철은 매번 보내버리고 조금이라도 한가해야 탄단다. 쇼핑의 경우도 그렇다. 나는 싼 물건을 여러 개 사자 주의인데, 그는 아무리 싸도 지금 필요하지 않다면 절대 사서 비축해 놓는 법 없이 비싸도 제대로 된 걸 산다 주의다.
서로 비슷하다고 이해되고 통해서 결혼했을 우리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많다는 걸 깨달아 간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것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횟수가 잦아질 뿐이다. (포기라고 하지 않겠다. 포기는 너무 슬프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야 오래갈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건 정답은 없다. 비슷한 사람끼리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으니까.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는 이렇게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벌어진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아무렇게나 대충 쌓아 놓는 것을 보고 그가 왜 깔끔히 정리하지 못하느냐고 단 한 번도 나에게 지적한 적 없듯, 나 또한 운전석 문짝에 과자봉지와 빵 봉지를 쑤셔 넣고 몇 날 며칠 버리지 못하는 그를 타박하는 대신 내가 알아서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원만히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이 이뤄진다
소노 아야코의 ‘타인은 나를 모른다’라는 책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이 있다. 작가는 이 세상에 자신과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작가 자신처럼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만 있으면 세상은 조금도 진보하지 못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어떻게 해서라도 일을 이루어내겠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개척한 결과를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나처럼 매사 대충대충하는 게 익숙한 사람은 일처리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과연 장점일지) 하지만 느리더라도 최대한 꼼꼼히 완벽하게 (한 두어 달 안 해도 될 정도로) 일을 처리하는 그가 있기 때문에 톱니바퀴 이 맞물리듯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닐는지.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연인 사이가 깊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앞을 놔두고 굳이 지하철 앞까지 가서 타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거 그쪽에서 타 보니 사람이 별로 적지도 않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