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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사는 이야기
by 이유미 Nov 12. 2017

벌어서 다 뭐했냐고요?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무엇보다 지갑에서 바람소리가 나네요.

<가키야 미우 ‘노후자금이 없습니다’를 읽다가>




오전 10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던 일요일 하루가 밤 11시가 다 되어 마무리되었다. 오렌지 빛 거실등에 의지한 채 일기장을 꺼내놓고 펜으로 몇 자 끼적이니 어느새 한 페이지가 꽉 채워진다. 일기장을 옆으로 미뤄놓고 밤 12시까지만 낮에 서점에서 산 에세이를 읽다 자려고 목차 부분을 펼쳤는데 불현듯 내일이 카드 결제일이란 게 떠올랐다. 아차, 깜박할 뻔했네.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들어 모바일 뱅킹에 접속한 나는 계좌 A에서 자동이체가 되는 계좌 B로 돈을 옮겼다. 순식간에 통장이 숨을 흡,하고 들이마신 것처럼 홀쭉해졌다. 줄줄이 돈 나가야 할 데가 떠오르는데 우선 당장 이체일이 아니란 이유로 얼른 로그아웃을 했다. 그럼 다시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 책장을 넘기는데 내일 아이에게 먹일 게 하나도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앱으로 장을 보고 줄줄이 비앤나 소시지처럼 사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결국 책 읽기를 포기했다. 문득 언제부턴가 현금은 없고 결제일이 도래할 신용카드만 줄줄이 꽂혀 있는 내 지갑이 왠지 처량해 보인다.


맞벌이인데 그 돈 다
어디 갔냐고 묻지 마세요


며칠 전 친정 엄마가 급하게 쓸 일이 있는데 용돈이 바닥났다며 20만 원만 송금해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며칠 뒤에 돌려준다는 메시지가 연이어 달렸지만 나는 지금 당장 너무 쪼들리는 통에 엄마한테 짜증 아닌 짜증을 냈다. 꿔주기 싫은 게 아니라 여의치 않은 내 상황에 내가 더 화가 났던 거였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20만 원 선뜻 그냥 주지 못하고 언제 갚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내가) 그러자 엄마는 늘 이렇게 돈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나를 더욱 열 받게 했으니 그 말은 바로 ‘니들 부부는 둘이 벌어서 그 돈 다 어디다 썼냐’는 거였다. 누구보다 우리 월급의 출처가 궁금한 건 당사자인 우리다. 왜 엄마는 늘 아픈 곳을 콕콕 찍어 짜증을 유발하는 걸까? 세상 모든 딸과 친정엄마가 그렇듯 나 또한 이에 질세라 엄마에게 버럭 대들고 말았다.

 

“제발 그 ‘둘이 버는 돈 다 어디다 썼냐는 이야기’ 좀 그만할 수 없어? 나도 내가 한 달 내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꼬박 자리에 앉아 머리에 쥐가 나게 글 써서 받은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너무 궁금하니까!”

illust by 이영채

이쯤 되면 엄마와의 다툼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 돈이 과연 다 어디에 가는 건지가 궁금해진다. 내가 용돈이 넉넉해 펑펑 쓰는 것도 아니고 외식을 내 돈 주고 하는 경우도 거의 없을뿐더러 때마다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얼마 전 퇴근길에 요즘 자주 듣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듣다가 맞벌이 부부로 한 달에 700만 원가량을 버는데 저축을 30만 원 밖에 못한다는 말에 김생민이 ‘슈퍼울트라스튜핏’을 날렸던 게 떠올랐다. 나와 다른 건 그 집은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 빼곤 저축을 거의 못하는 건 우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듣는 내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위로도 됐지만) 마음이 무거운 게 사실이었다. 자, 우리의 월급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다 그렇듯 나도 집 대출이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가 생기면서 갑작스럽게 집을 옮기는 바람에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 당시 은행 관계자가 내민 대출 서류에 서명, 서명, 서명을 하며 본 가장 소름 끼치는 숫자는 만기 30년이었다. 나는 또다시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 서명을 하며 이러다가 정말 내 아이가 커서 우리 빚을 갚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까마득하고 아연한 30년이란 숫자를 앞당길 사건이(이건 말 그대로 사건이어야만 한다. 로또에 맞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니까) 벌어질까? 사실 나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진 빚을 갚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이 상상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따지고 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빚 갚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다. 학자금 대출이 그렇고 전, 월세가 그렇다. 무리하지 않으면 빚 없이 사는 것이야 왜 가능하지 않겠냐만 살다 보면 내가 벌이지 않은 일임에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너무 허다하다. 그런 일은 언제 어디로 튕겨 오를지 모르는 탱탱볼처럼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현실에 만족하면 더 행복해질까?  


한때는 꼬박꼬박 가계부를 적었다. 뭔가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라기보다 도대체 돈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진 알아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1년 전부턴 아예 쓰지 않는다. 내 인생 패턴이 늘 그렇듯 어느 날 갑자기 허무해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가계부 쓴다고 저축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닌데. 회사에서 쓰는 몰스킨 다이어리 첫 장에는 고정지출비용과 그것들을 입금해야 할 계좌번호가 메모되어 있고 이것만 꼬박꼬박 날짜 지켜가며 내도 대부분의 달이 마이너스다. 다른 게 저축이 아니라 이자와 원금상환 그리고 보험 등만 제대로 내는 게 우린 저축이야,라고 생각하며 사는데도 참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원래 돈이 없으면 더 사고 싶은 게 늘어나는 법.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생필품들도 빨리 없어진다. 한 번은 같은 빌라에 사는 또래 엄마가 출근길 아이를 등원시키다 보면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유유히 손을 흔들다가 버스가 사라지면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는 엄마들이 그렇게 부럽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언니, 요즘 젊은 부부들은 다 잘 사는 모양이에요. 엄마들이 다 집에 있고. 나는 그 엄마들이 그렇게 부러워요. 나는 아침마다 출근하느라 늘 아등바등인데.”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엄마들은 OO엄마가 더 부러울걸? 외벌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우리 그나마 맞벌이라 이렇게 쓰고 사는 거야. 외벌이인 집들은 정말 아끼고 아껴서 사는 집도 많아. 너무 우울해하지 말라구.”


맞벌이 건 외벌이 건 안 힘든 집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서 늘 더 바라기 때문에 지금 사는 것에 만족할 줄만 알아도 행복은 2배로 깃들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나도 우리 집 돈이 다 어디로 가나 궁금해했지만 뭐가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그 답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나저나 월급날이 고작 열흘 남짓 흘렀는데 왜 내 통장은 이미 ‘텅장’인 걸까? 이달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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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 사는 이야기
29CM EDITOR / 사물의 시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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