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내가 에세이를 매주 쓰기 시작한 건 3년 전의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에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그때에는 정말이지 ‘어느 누가 이런 시시콜콜한 글을 읽을까’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매번 노트북을 펼쳤다.
<최민석 ‘꽈배기의 멋’을 읽다가>
월요일에는 에세이 한 편을 써서 일러스트 작가에게 보내야 한다. 29CM 사이트에선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되지만 일단 일러스트 작업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1차로 쓴 원고를 먼저 보낸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미리 써 놓느냐,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월요일에 (닥쳐서) 쓴다. 오늘도 무슨 주제를 갖고 글을 쓸까 고민하며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가 에세이를 쓰는 방식. 몇 달 전 카피 관련 강의를 했는데 수강생들이 의외로 에세이 쓰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짧은 글이 아닌 A4 한 장이 넘어가는 분량에 자신의 생각이나 삶이 드러나는 글. 내가 쓰는 에세이는 보통 A4 한 장 반에서 2장인데 (2장이 넘을 때도 있고) 그 정도가 쓰는 사람, 읽는 사람이 부담 없는 적정선인 듯하다. 이게 방법이라고는 썼지만 사실 정확한 법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어떻게 쓰다 보니 이렇게 쓰게 되었다. 그래서 수강생들이 다음 시간엔 어떻게 에세이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달라고 주문을 해왔을 때 고민이 되기도 했다. 딱히 과정이랄 게 없는데 뭘 설명해 줘야 할는지……
일단 잘 쓰겠단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이렇게 쓴다. 에세이는 주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틈틈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는 반드시 메모를 해둔다. 주제가 있다는 건 글이 50%는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내가 쓰고 싶고 쓸 수 있는 것이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제 하나가 골라지면 초반에는 딱히 주제와 상관없는 일상적인 (그러나 공감될만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너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면 글의 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뿐더러 읽는 이의 흥미를 끌기 힘들다. 이는 내가 다른 작가의 에세이를 읽을 때 그런 글에 관심이 갔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쓰는 것이다. 보통은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는 ‘그래서 말인데’ 나 ‘그나저나’로 물고를 틀 때가 있다. 되게 간단하면서 있어 보이는 사건 전환 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다음 거의 대부분 한 편의 에세이를 단번에 써버린다. 이는 글의 퀄리티를 떠나서 에세이를 쓰는 방식일 뿐이다. 중간에 멈칫하거나 뭔가 다른 인용 문구를 넣어야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맥이 딱 끊겨서 끝까지 쓰기가 오히려 힘들어진다. 잘 쓰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하다. 1차로는 한 번에 쭉 써야 한다. 그런 다음 2차로 수정을 하면서 꼭 넣어주면 좋을 것 같은 정보나 인용구로 양념을 친다. 그래서 에세이는 생각난 주제를 바로바로, 빨리 써버리는 게 좋다. 어떤 날은 글감이 도통 떠오르지 않지만 어떤 날은 하루에 아니 순식간에 서너 개씩 떠올라서 그대로 에세이 3, 4편을 내리 써놓을 때도 있다. 그러면 한동안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
여러 편의 글을 써 오면서 느낀 에세이란 장르의 맛은 당연히 솔직함이다. 소설과 달리 에세이는 독자들이 누군지 아는 작가의 생각과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거나 꾸미려 들면 통하지 않는다. 나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한 글에 매력을 느껴봤기에 솔직함이야 말로 에세이가 가진 가장 최고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에세이의 비법을 묻는 수강생들에게 입에 침 튀기며 한 말은 딱 이거 하나였다. “솔직하게 쓰세요. 나를 그냥 내려놓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글에서 나를 내려놓는다는 게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하다 보면 참 쉽다. 그 과정에서는 욕도 많이 먹고 꾸지람도 듣고 자괴감에 빠질 만큼 다음 글 쓰기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간혹 안 좋은 댓글을 보면서 내가 얻은 나름의 결론 중 하나는 글을 자세히 읽지 않는 사람일수록 악플을 단다는 것이다. 즉 그런 댓글을 보면 열에 아홉은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물론 내가 이해하기 어렵게 썼을 수도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댓글은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악플이 두렵다면 아예 댓글 다는 기능을 막아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반면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수긍하고 바르다고 하는 글만 쓸 수 있는가. 아니 그런 글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말이다. 어디에나 이면이 있고 반대 입장이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겁내면 안 된다.
사소한 주제부터 쓰기 시작한다
솔직한 것과 더불어 중요한 건 ‘사소한 주제’를 정하는 것이다. 즉 주제를 너무 민감하거나 무겁거나 사회적 이슈로 잡을 필요는 없다. 가볍게 내가 쓸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봐야 한다. 내가 처음 에세이로 잡았던 주제는 ‘발 각질’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했네. 누군가는 글에 의미도 있어야 하고 테마도 묵직해야만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독자들은 아주 작고 별 것 아닌 소재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한다. 에세이에서는 의미보단 공감이 중요하다. 그렇다 보니 솔직한 것, 내가 느낀 별 것 아닌 감정을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적어 놓는 게 중요하다.
내가 읽고 감명받거나 잊을 수 없는 기운을 느낀 에세이는 반드시 표시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똑같이 베껴 쓰는 것도 실력을 키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중간에 끊김 없이 끝까지 읽히는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이나 관심을 끌만한 표현법, 신선한 단어, 하다못해 글의 분량을 체크하기 위해서라도 필사는 요긴했다. 에세이도 소설만큼이나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옮겨보는 건 괜찮은 방법이다. 무릇 이 모든 방법에 앞서 여러 편의 다양한 에세이를 많이 읽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내 것으로 소화해 놓는 노력이 평소에 잘 갖춰져 있을수록 어떤 원고 청탁이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기한 내에 막힘 없이 쓸 수 있다. 가끔 어떻게 하면 에세이 혹은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물으시는데, 기본적으로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 즉 뭘 써야 잘 써지지 않겠는가? 소설도 그렇고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잘 쓰고 싶다면 지금 쓰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