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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18. 2018

친구가 우울하다면 간지럼을 태우자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틈이 주어지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내가 요즘 책 못지않게 찾는 게 있으니, 바로 팟캐스트다. 독서 관련 팟캐스트만 주로 듣다가 작년 김생민의 영수증을 알게 되었고 최근에는 그전에 시작된 비밀보장까지, 역순으로 찾아 듣고 있다.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일부러 끊지 않으면 계속 듣게 되는 마법 같은 팟캐스트의 세계. 작년 하반기였나? 그날도 퇴근하는 길 버스에서 김생민의 영수증을 들으며 혼자 킥킥거리고 있었는데, 영수증 의뢰인이 친구가 우울하다고 해서 위로해줄 겸 술을 사줬다, 커피를 사줬다, 라는 대목에 김생민이 내놓은 방침이 어이없고 황당해서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돈을 쓰지 않고 친구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방법은 바로 ‘간지럼 태우기’였다. 


“뭐라구요? 간지럼을 태우라고요?”

어이없어하는 송은이, 김숙이 재차 묻자, 이게 어때서요?라는 듯 김생민이 재차 말했다. 

“우울한 친구는 간지럼을 태워 웃게 하자!”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방법이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간지럼을 태워서 안 웃는 이는 드물지 않나? 게다가 친구가 갑자기 간지럼을 태운다고 생각해봐라, 내 쪽을 향해 손만 뻗어도 웃음부터 나올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 잘 논다고 (나름)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아이는 부쩍 엄마와 함께 놀길 원한다. 


“엄마 나랑 같이 놀자. OO 방에서 같이 놀아요.”


옷자락을 잡아끌면서 제 방으로 함께 가길 원하는 아이를 보고 적잖이 당황한 나는 당연히 그러면 될 것을 설거지해야 한다, 엄마 이거 청소해야 한다, 라면서 잔꾀만 부리고 있었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아이랑 노는 게 다소 버겁고 지친다. 활발하게 놀아주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내 아이랑 노는 것에도 부쩍 연기가 필요하다. 신나게 떠들며 호응해주고 싶은데 하품은 왜 그리 나는지. 아이가 눈치챌까 입을 벌리지 않은 상태에서 콧구멍만 벌름거리는 일명 ‘내적 하품’을 연신 했다. 자동차 장난감, 레고, 공룡으로 어느 정도 놀아준 다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렇게 2~3권 읽고 나면 또 할 일이 없어져 뭘 해줄까 고민하던 나는 아이에게 무작정 간지럼을 태웠다. 확실히 어른보다 간지럼에 약한 아이는 내가 살짝만 손을 대도 꺄르르 꺄르르 넘어간다. 더불어 약간의 강약 조절을 하면서 소리도 크게 냈다가 작게 냈다가 짧게 간지렀다가 길게 간질이는 등 다른 도구 없이도 땀이 나고 녹초가 되도록 웃길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한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며 간지럼을 태우고 턱 밑에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고 간질이던 나는 문득 김생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를 웃게 만들고 싶다면, 간지럼을 태우자.”


정말 그러네? 돈 하나 안 들이고 이렇게 상대방을 웃길 수 있다니. 웃는 게 힘들면서도 아이는 그칠 줄을 모른다. 나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아이를 웃게 할 수 있을뿐더러 꺄르르 숨 넘어가게 웃는 아이를 보면 나도 웃지 않을 수 없다. 동작을 멈춘 후 아이를 보니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이는 금세 내 손을 재촉한다. 


"엄마 더 해주세요!"


특별히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이 놀이가 아이의 정서에 그 어떤 영향이라도 끼쳐야 한다고, 엄마니까 한번 놀아줘도 제대로 놀아줘야 한단 생각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워킹맘이다 보니 평일에 많이 놀아줘 봤자 2, 3시간인데 그 시간만큼은 알차게 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다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고 별거 아닌 방법으로도 아이를 즐겁게 해줄 수 있었는데. 


사실 아이는 대단한 도구로 자신과 놀아주길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엄마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과 관심이 오로지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것만 느껴도 행복감은 충분히 느낄 것이다. 아이는 심심해 봐야 창의력도 생긴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너무 많은 놀이기구나 시시때때로 짜인 스케줄이 없어야 오히려 그 빈틈을 통해 스스로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거나 시간을 갖기 위해 이것저것 해본다는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참 위로가 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엄마를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반가운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부족함이 드러나야 채우고 싶은 게 생기듯 놀이든 위로든 아무려면 어떤가. 간지럼 태워 한 번 웃게 해주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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