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나서 쓰는 글
지난 주말, 드디어 영화 ‘인턴’을 보았다.
극장에서 본 이들이 말하길 우리 회사(29CM) 같다고 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우리 회사와 비슷한 감이 없지 않았다. 사무실 풍경도 그렇지만 업무 자체가 비슷해서 그런 듯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든 영화지만 우리가 쓰는 단어를 쓰고 우리가 하는 고민을 했다. 영화는 산뜻산뜻하고 예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프로패셔널해 보이고 활기찼다. 바쁘고 지친 기색도 보였지만 그마저도 멋졌다.
보는 내내 영화가 곧 끝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보는 즐거움은 확실히 있었다. 내용면에서는 어느 정도 뻔했지만,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확실했다. 저렇게 멋진 회사에서, 저렇게 세련되고 넉넉한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턴을 본 수많은 관객 중 몇몇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겠지.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자신감에 넘치는 워킹맘을 본 뒤, 남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아이가 잠들어 있는 작은 방으로 갔다. 지난 여름에 유니클로에서 산 파자마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아이 이불 옆에 얇은 이불을 반 접어 깔고 조용조용 누웠다. 누구라도 꿈꿀 그녀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는 건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또한 대체적으로 내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부럽다는 차원은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나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집에서 입는 옷, 쓰는 그릇 등을 좀 더 잘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잠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 동안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잠드는 내가 못마땅하다. 순전히 이건 생활습관이다. 습관이 계속되면 생활 패턴이 되고 만다. 그러지 않으려고 조금 무리해 잠옷까지 샀는데 그 잠옷은 고이 접어 서랍 속에 들어가 있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 고급함이 느껴지는 삶을 살고 싶다. 고급함이라고 하니 뭔가 좀 유치한데, 그걸 대신할 단어가 뭐가 있을까. 고상함 정도? 그러니까 삶은 조촐하고 소박해도 잘 때는 잠옷을 입고 자고 이불 커버는 늘 섬유세제 냄새가 나며 발뒤꿈치는 맨들 맨들하고 비데는 없어도 변기는 늘 깨끗한.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중구난방이 됐다.
적어 놓고 보니 결국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삶이다. 그 세심함이란 꾸준하고 일관된 것이어야 한다. 게을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나는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대충 사는 삶을 사는 여자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