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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7. 2018

질투심으로 읽은 게 맞다

1일1리뷰: 질투가 존경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만

아직 깜냥도 안 되면서 괜히 질투심이 생겨서 읽기를 미루다가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어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잘 쓴 글을 보면 질투심이 마구 생기는데, 김하나 작가도 그중 하나다. 그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챙겨 듣는데 듣고 있으면 차분하고 묵직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에 빠져들게 된다. 왜 흥분하면서 웃고 떠드는데도 요란스럽지가 않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그녀처럼 조곤조곤할 말을 하는 사람인데,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글을 읽는 것처럼 밑줄 긋고 싶어 진다. 말에 밑줄을 그을 수 있다면... 어쨌거나 글을 쓸 때처럼 말할 때도 내 생각과 의지를 분명하게 하고 싶다. 그렇다면 말할 때 좀 더 가라앉을 필요가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선 특히 ‘돈을 갈퀴로 긁는 사람’과 ‘라면과 개똥과 기품’ 편이 좋았다. 

‘돈을 갈퀴로 긁는 사람’은 내용 자체로 봐선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경험담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많이 공감할 수 있던 내용인데, 부자인 사람이 가진 것보다 잃을 것에 대해 먼저 신경 쓰고 애태우는 모습과 문구점에서 500원 1000원 벌면서도 흥 넘치는 목소리로 ‘돈을 갈퀴로 긁네 긁어’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가진 것이 많아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불행해지고 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말투와 표정은 다른 이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그것은 탐욕의 얼굴이다. (중략) 그에 반해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정직한 노력으로 버는 돈에 감사할 줄 알고 또 넉넉한 마음과 기분 좋은 미소를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라면과 개똥과 기품’ 편은 비슷한 작업을 오래도록 반복한 사람 특유의 낭비 없는 동작에 관한 이야기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이던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동작과 몸짓에 깃든 기품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애견 카페에 갔을 때 개들이 똥오줌을 싸면 직원들이 재빠르게 와서 치워주는데 직원인 20대 청년이 순식간에 다가와 개 오줌을 닦는 모습에서 느낀 기품에 대해서도 풀어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들 밥 먹는 옆에서 그들이 데려온 개의 똥오줌을 치우는 일은 ‘기품’과는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질 만한 일이다. 바로 그렇기에, 그 청년의 기품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기품 없을 곳에서 스스로 길러낸 것이어서 더욱 눈부셨다. (중략)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처지에서든, 나도 나의 일에 눈이 아닌 정신을 다하여 기품을 기르는 생활을 하고 싶다.”


퇴근 후 가끔 지하철역과 연결된 백화점 분식 코너에서 아이가 먹을 전복죽과 김밥을 사는데, 거기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도 이런 걸 느꼈다. 주문을 하면 김밥을 착착착 썰어 도마 아래에 설치된 랩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끌어내 용기를 감싸고 그걸 또 가벼운 동작으로 끊어낸 다음 봉지에 넣어주는 일련의 동작. 그들은 너무 많이 해서 눈 감고도 하는 그 동작들이 제법 멋져 보일 때도 있다. 어릴 때는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괜히 부러워 혼자 소꿉놀이할 때 순대집 아줌마나 슈퍼 아줌마(계산하는 동작 때문에)를 흉내내기도 했다. 어른이 된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매일 해서 넘겨야 하는 카피 작업들을 대할 때 이런 마음이 되곤 한다. 뭔가에 능숙해진다는 건 나를 괜히 우쭐하게 만들기도 한다.



#힘빼기의기술 #김하나 #시공사 

#카피라이터의 아쌀한 글맛이 궁금해질 때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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