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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14. 2018

시 같은 시나리오

1일1리뷰: 그들의 대화, 어쩌면 시였을까?

어제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과 술자리 모임이 있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그런 자리는 좋아해서 기회가 닿는다면 모두 참석하고 싶지만 애 엄마인지라 쉽지 않다. 일주일 전쯤 남편에게 미리 말해두고 약속을 잡았다. 날이 많이 풀려서 좋았다. 1차, 2차 맛있게 먹고 아주 살짝만 취했다. 무리해서 술을 마시지 않은 이유는 다음 날 출근 문제도 있지만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게 싫어서다. 뭐 택시가 무섭거나 그런 것보다 술 먹고 타면 울렁거려서. 그게 싫어서다. 아직 지하철이 끊기지 않아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역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구로까지 갈 수 있는 막차밖에 남지 않았다. 구로에서 내려 택시를 타기로 하고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았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책 읽는 걸 가장 좋아하지만 술을 좀 마신 날에는 눈이 피로하기도 하고 시간도 빨리 갔음 해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 나는 ‘옥수수’를 이용하는데 SK고객 전용관에 들어가면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어제 고른 영화는 ‘여배우는 오늘도’다. 70분짜리 짧은 영화라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 볼 수 있을 듯했다. 전부터 보고 싶었으나 볼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잘됐다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영화배우 문소리가 주인공이다. 배우 문소리, 즉 여배우의 실제 사생활을 보여준다. 나이듦을 걱정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하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까지 돌봐야 하는. 예전부터 '문소리 식' 연기를 좋아한 나는 그녀의 능청스럽고 뭐라고 해야 되나… 거리낌 없이 다 내려놓는 것 같은 특유의 솔직함과 예쁜 척하지 않는 모습을 좋아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독특한 매력을 더없이 발산한다. 진짜 문소리가 그럴 것 같은 리얼함. 



어쩔 수 없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떠오른다. 그녀가 홍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고 영화의 유형도 비슷하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CG 같은 기법은 더더욱 없고 화면이 예쁜 것도 아니며 대화가 많다. 영화 속 문소리의 얼굴처럼 맨 얼굴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얼마 전 읽은 ‘더 테이블’이 떠올랐다. 김종관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를 옮겨 놓은 책이다. 시나리오지만 감각적으로 편집되어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컨셉부터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8명의 인물들이 대화가 전부다. 사실 이런 스타일을 예전에 한번 써보고 싶었다. 결국 내가 썼던 건 차 안에서 남녀가 대화를 하는 시나리오였다. 각기 다른 네 커플(여기서 커플은 연인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니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비하인드 스토리, 즉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그들의 뒷이야기가 보너스처럼 펼쳐진다. 아직 영화 ‘더 테이블’은 보지 못했으나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상상한 인물을 어떤 배우가 연기했는지 궁금해진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건 이런 재미가 있다. 내가 상상한 게 맞을지. 


이 책을 읽고 김종관 감독의 글쓰기에 매료되어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읽었다. 짤막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좀 야한 것도 있다. 아무래도 사랑이 주제라. 

끝으로 ‘더 테이블’에서 ‘은희’ 편이 가장 끌렸다. 



#더테이블 #김종관 #아르테

#영화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는 걸까? 궁금해질 때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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