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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19. 2019

마음이 어떻게 하나야?   

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희한한 일이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근한 날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굉장히 춥다. 차를 가져가는 게 그의 의지가 아니라 회사 스케줄 때문이건만, 몇 차례 반복되고 보니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싸락눈이 내리는 퇴근길. 어제도 남편이 회사 물류센터로 바로 출근을 해야 해서 차를 가져간 참이었다. 내가 이렇게 차를 운운하는 이유는 아이의 하원 때문이다. 보통은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나 대신 아침에는 남편이 아이를 등원시켜주고 차를 어린이집 앞에 세워둔 채 지하철로 출근한다. 그러면 어린이집까지 대중교통으로 퇴근한 나는 거기서부터는 아이를 태워 차로 집까지 올라간다. 그래 봤자 집까지 버스로 5정거장 남짓이다. 최근에는 잦아졌지만 평균 일주일에 한번 꼴로 이렇게 다니는 건 이벤트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어서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한 놀이, 배운 노래와 간식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한참을 걸으니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뒤를 돌아보니 버스 2대가 나란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뛰지 말아야지, 어차피 버스는 자주 다니니까, 라고 생각했다. 근데 버스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순간적으로 (왜 그랬는지) 아이의 손을 잡고 보폭을 넓혔다. 

“저거 타자, 서하야”


미리 예고하지 않고 뜀박질부터 해서 그런지 아이는 준비할 새도 없이 그대로 발이 꼬였고 나도 덩달아 기우뚱하며 보기 좋게 길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손에 배인 땀 때문에 우리 둘은 더 꼭 붙었고 어른인 나의 무게가 아이에게까지 쏠리는 바람에 더 낮게 넘어진 아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볼을 살짝 쓸리고 말았다. 

“으아앙”


그대로 울음이 터진 아이를 덥석 안고 안절부절. 어떻게 어떻게 하며 미안하다고 연신 아이를 달랬다. 달래면 뭐하나, 미어지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울었고 마침 뒤에 오던 버스가 우리 옆에 섰길래 아들을 안은 채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허둥지둥 좌석에 아이를 앉히고 버스 카드를 찍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아이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눈높이를 맞추고 상처를 보듬었다.

“많이 아프지? 미안해, 엄마가 갑자기 뛰는 바람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려는 듯 훌쩍이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괜찮아?”

당혹스러움이 감춰지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응응!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아이도 안심이 되는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생각했다. 

‘너… 벌써 이렇게 커버린 거야?’




요즘 들어 부쩍 아이가 빨리 컸으면 하고 바랐다. 퇴근 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가방만 던져 놓고 저녁 밥을 짓는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 몸까지 안 좋은 날은 이불 속으로 직행하고 싶지만 현실은 엄마모드. 빨리 커라. 죄책감 들지 않게 아무거나 잘 먹고 엄마가 옆에 없어도 다른 형들처럼 혼자 있고 싶어하는 나이로. 어서 어서 커서 엄마 좀 편하게 해줘.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머릿속은 이런 바람들로 꽉꽉 채워졌다. 힘든 날일수록 더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잖아. 아이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며 미안해지는 반쪽 짜리 마음. 종종걸음으로는 건널 수 없는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뛰듯이 아이가 나도 모르게 부쩍 커버린 걸 느낄 때마다 이런 내 마음은 다시 당황스럽다. 마음이 왜 이리 여러 갈래야. 


길바닥에 넘어진 그날 밤, 아이가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새로 밥을 지어서 저녁을 먹였다. 식탁을 치우고 산처럼 쌓인 설거지 앞에 서서 생각했다. 

‘그래, 마음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지’

빨리 컸으면 하는 마음과 천천히 자랐으면 하는 마음, 모두가 내 마음인 걸. 왜 마음까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을까? 마음이 두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떤가. 지금 내 마음이 진짜 어떤지 알아채고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서로 꼭 끄러 안고 잠이 오기를 청하는 밤. 아주 오랜만에 소리 내어 기도했다. 

“무탈하지 못했던 오늘이지만 이만큼만 아프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그러자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따라 했다. 

“아멘.”

아직은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아들을 더 세게 끌어 안았다. 



<오늘로 쓴 카피> 

얼른 커라, 아니 너무 빨리는 말고. 

합쳐지지 않는 몇 개의 마음

“괜찮아, 마음이 하나일 필요는 없잖아”  

여러 마음에 복잡해지면 OOO 


*소재: 차(茶), 커피, 맥주, 요가복, 텀블러 등 




일상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카피에 응용하는 오늘로 카피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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