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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6. 2019

일부러 눈을 밟는 사람들

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한 겨울 오전 8시의 합정동 골목은 적막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저녁 시간대와 달리 얼핏 푸른빛이 감도는 아침은 때때로 밤보다 서늘하다. 한 번은 행인이 나뿐인 골목길이 낯설어서 아침이지만 누군가 나를 헤쳐도 내가 지른 비명에 대꾸해줄 사람 조차 없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오늘도 난 씩씩하게 그 골목길을 걸어 회사에 도착한다. 아침 7시 50분이다. 


자율 출퇴근이 가능해서 8시부터 11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면 되는 우리 회사에 나처럼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나처럼 고정적으로 일찍 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얼굴만 알고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은 직원들도 더러 있다. 


그날도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큰 도로를 지나쳐 골목으로 꺾어져 회사를 향해 걷는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앞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대화해 본 적 없는 동료였다. 누군진 알지만 다가가서 어깨를 툭 치며 “이제 출근해요?”라고 인사할 정도는 아닌 사이. 아, 저기 저 사람이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내 보폭대로 걷고 있었다. 


1분쯤 지났을까? 작은 골목길 4개가 교차하는 곳을 지나던 그는 갑자기 누군가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또 다른 동료가 앞에 가고 있나? 하고 그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봤다. 사람이 없다. 다만 거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을 뿐. 그는 개발자 중 한 사람으로 키가 크고 다소 과묵한 스타일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당연히 뒤에 내가 따라오는 줄은 몰랐을 테고)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골목길에서 길고양이를 향해 손 인사를 한 것이다. 

나는 풉, 하고 실소했다. 무뚝뚝한 뒷모습을 따라 걷는 중이었지만 걸음을 조금 늦췄다. 내가 뒤에 있었다는 걸 알면 다소 민망해할 것 같았다. 길냥이에게 마치 친구에게 하듯 인사하는 그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며칠 전 퇴근 후 아이와 하원 하는 길이었다. 그날도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우리 집이 종점 근처다) 오르막길을 아들과 함께 걸었다. 전날 눈이 왔지만 날이 제법 푹해서 아주 구석구석에만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다. 아들은 걷다가 눈이 보이면 그쪽으로 가 괜히 한번 눈을 밟아보고 또 걷다가 눈이 보이면 그 위를 쿵쿵 뛰곤 했다. 얼른 가자 재촉하고 싶은 마음도 이유도 없어 아들의 속도에 맞춰 걷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기 우리 앞에 가는 한 아주머니의 걸음이 이리저리 중구난방이었다. 어둑어둑해져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아주머니도 우리 아들처럼 눈 위를 밟고 가는 게 아닌가. 슈퍼마켓 봉지를 한 손에 들고 뒷짐진 채 걷는 아주머니는 쉬엄쉬엄 눈을 밟았다가 다시 눈 없는 아스팔트를 걷다가 다시 눈 더미가 보이면 그 눈을 밟아 그 위로를 걷고 있었다. 내 아들과 똑같은 행동. 나는 또 한 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 왜 웃어?”

영문을 모르는 아이가 날 향해 물었다. 

“저 아주머니도 서하처럼 눈이 밟고 싶었나 봐.”

아이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서둘러 바라봤다. 그 아주머니도 해 떨어진 한적한 골목을 혼자 걷는 줄 알았을까? 아니면 누가 뒤따라 오던 상관없이 그저 눈이 밟고 싶었을까? 

고양이에게 아침인사를 하는 사람과 일부러 눈 더미를 찾아 걷는 사람. 내가 최근에 본 낯선 어른들이자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하는 행동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다. 나는 어떤 게 있을까? 모르게 하는 행동이므로 여기선 밝힐 수 없다. 사실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니 선뜻 떠오르지도 않는다. 아이로 돌아가는 어른들. 우리가 그런 행각을 아주 잠시 할 때 내 안에 잠재된 스트레스 중 일부는 비눗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터졌다는 흔적도 없이 아주 빠르게 사라질지 모른다.  




<오늘로 쓴 카피>

누가 보지 않는단 생각으로 지금을 살아봐.  

평소 네가 얼마나 많은 걸 참고 있었는지 알게 돼.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행동이

어쩌면 진짜 나일지도 몰라. 


*소재: 탄산수, 음료수, 맥주, 우유, 과자, 사탕 등 


(TIP: 짜릿하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나 술 혹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먹거리를 광고할 때 쓰면 어떨까?) 


일상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카피에 응용하는 오늘로 카피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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