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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5. 2019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이보다 우리 부부와 함께한 세월이 더 길다. 결혼하자마자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고 그 뒤로 4년이나 지나서야 아들을 낳았으니까. 봉봉이는 이제 9살. 사람 나이로 치면 50대다. 최근에는 미용을 하기 시작했다. 6개월에 한 번씩. 나는 신세계를 만났다. 그래 봤자 아주 깔끔한 상태는 2, 3주 정도고 고양이의 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란다. 잘 먹고 건강할수록 털이 잘 자란다는데 봉봉이는 건강한 모양이다. 그래도 한번 싹 밀었더니 그 뒤로 털도 덜 빠지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가장 우려했던 녀석의 상태가 의외로 좋았다. 몇 년간 있던 털이 없어져서 예민해지거나 무기력해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더 활발해지고 애교도 늘었다. 추측하건대 죽어 있는 털이 몸에서 떨어지니 본인도 더 가뿐해지고 우선 깔끔해져서 만족하는 듯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 


고정으로 가는 고양이 미용실이 생겼다. 다행히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고양이 전문 미용숍이 있는 걸 알았고 단골이 되었다. 처음 방문했을 땐 처음이라 그렇겠지 했는데 몇 번 방문해 보고 또 타이밍 때문에 다른 고양이 미용하는 걸 보고 느낀 게 있다. 숍에는 2명의 직원이 있다. 둘 중 한 분은 원장일 것이다. 숍에 가면 커다란 투명 창이 있는 곳에 들어가 한 명은 고양이를 잡고 한 명은 열심히 털을 깎는다. 털을 다 밀면 목욕을 시키고 눈곱과 귀를 닦이고 손발톱은 (안전을 위해) 미용 전 깎는다. 그런 다음 완벽히 건조까지 마치면 밖으로 나온다. 유리창이 있다 보니 두 분이 호흡 맞춰 미용하는 걸 다 볼 수 있다. 어마어마한 털 날림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둘은 시종 즐겁고 유쾌해 보인다. 미용하면서 대화도 많이 한다. 조금 과장해서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호흡을 맞춘 지 막 일주일 남짓 된 사람들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한 말이 재미있든 없든 웃어주고 그러지 않나. 하지만 볼 때마다 그들은 늘 그렇다. 그런 두 분을 보면서 일하는 사람 간의 호흡이란 걸 생각했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져서 다른 기관으로 옮겼지만 아이가 얼마 전까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도 이런 경험을 했다. 원장님과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고작 하원 할 때 정도지만 그 잠깐에도 두 분의 투닥거림이 난 좋았다. 그건 상사와 직원 간의 관계라기보다 엄마와 딸의 관계 같았다. 원장님은 대놓고 선생님께 또 투덜댄다,라고 말하고 선생님은 핑~ 하는 게 여간 자연스럽지 않다.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학부모 앞에서 그런 말은 못 하리라. 엄청 예의 차려가며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보여 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선생님들에 대한 우려를 한 적이 없다. 그 둘의 관계에서 다른 건 볼 필요도 없는 화목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양이 미용 숍의 두 분과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누가 보건 말 건 상관없이 그 둘이 지내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신뢰가 전해진다.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작은 믿음이 모이면 묻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모든 게 순조롭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이 잘 될수록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적을 것이고 스트레스가 없으니 손님을 상대하건 아이를 돌보건 짜증과 불만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회사에서 마음 맞는 동료 한 명만 있어도 회사 생활은 괜찮다, 라는 생각을 했다. 단절되지 않고 고립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하루하루는 무탈할 것이다. 



<오늘로 쓴 카피>

좋음을 드러내고 싫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화목. 



*소재: 기업 메시지 광고, 브랜드 신뢰에 관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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