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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19. 2019

네가 이 여행을 기억할까?

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우리 회사가 있는 합정동에는 나름 유명한 돈가스 집이 있다. 5월 말이면 회사가 선릉으로 이사를 가는데 나는 벌써부터 이 집 돈가스를 먹지 못할 게 걱정된다. 여기 돈가스를 내가 너무 좋아한단 사실을 아는 몇몇 동료들은 나에게 묻는다. “마루 돈가스 못 먹어서 어떡해?” 나는 대답한다. “주말에 외식하러 올 거야. 여기로.” 내 사십 평생 먹어본 돈가스 중 가장 맛있다고 자부한다. 가게 이름은 ‘마루 돈가스’다. (합정동 갈 일이 있다면 꼭 드셔 보시길!)     


그날 점심은 팀 회식이었다. 3월 말에 이직하는 팀원이 돈가스를 좋아해 고민 1도 없이 마루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통유리 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된다. 마루 돈가스 앞 도로에 일렬로 쭉 피는 벚꽃은 정말 예술이다. 벌써 아주 작게 몽우리가 올라왔다. 날이 푹해서 작년보다 일주일 빨리 필 거라고 옆에 앉은 동료가 말해주었다. 


4월 둘째 주에 가족끼리 일본 여행을 계획이 있다. 벚꽃 필 때 일본 가는 게 희망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드디어 보나 했더니 일본은 아마 4월 첫 주에 다 필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갈 때면 꽃잎이 다 떨어진 다음일지도 모르겠다. “서하 데리고 가는 거야?” “응. 서하의 첫 해외여행이지.” 제주도는 몇 번 가봤지만 외국은 처음. 5살이니 2시간 정도는 아이패드로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믿고 계획을 추진했다. “적당하네. 너무 어릴 때 가봤자 기억도 못해.” “맞아. 맞아.” 동료와 어린 자식을 동행한 비행기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돈가스가 나왔다. 




같은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전자책으로 ‘엄마 내공’이라는 책을 읽었다. 최근 유익하게 읽은 엄지혜 기자의 ‘태도의 말들’에서 그가 육아서는 이거 하나면 충분하겠다,라고 생각했다기에 냉큼 주문했다. (이놈의 책 팔랑귀를 어쩌면 좋을까) 아니나 다를까 정말 주옥같은 이야기가 많았고 특히 어떤 이의 리뷰처럼 지금 바로 실행해 볼 수 있는 대안이 있어 좋았다. 낮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해외여행에 대해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 참이었는데 막 펼친 페이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 책은 묻고 답하는 식이다) “유아의 여행, 아이도 좋아할까요?” 질문을 한 엄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환승을 12번이나 하며) 장거리 국내 여행을 아이와 다녀왔는데, 문득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단다. 정작 아이는 기억도 못하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닌지. 나도 그렇고 내 아이 또래의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 어릴 때 데리고 다녀봤자 소용 있겠어?라는 말에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태도다.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버리는 것. 내가 이해한 바로는 지금이 순간을 만끽하고 즐겨 볼 줄 아는 것. 아무리 어려도 그런 건 겪어볼 수 있다는 얘기.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성인이 되어서 반쯤 노예처럼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통째로 던져 확 살아버릴 줄 안다’는 것이다. 확 살아버릴 줄 안다니. 정말 멋진 표현! 


확 살아버린다는 말의 의미는 비단 여행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행복한 것을 알고 나중을 위해 지금을 저축하지 않는 것. 순간을 쓸 줄 아는 실행력이 길러진다는 이야기도 된다. 우리는 자주 말한다. ‘해야지, 가야지, 봐야지’ 나중을 위해 지금을 계속 비축한다. 나는 당장에 그런 저축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했다, 갔다, 봤다”가 되는 삶을 살겠다고 명심했다. 그날 하원 하는 길, 아이의 손을 잡고 집과 반대편으로 걸었다. 산책하자고 말만 했었는데 당장 하기로 했다. 아이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물 웅덩이를 쳐 보고 어느 집 담벼락을 찔러보고 종이박스를 두들겨 보았다. 모두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신기해하고 어서 집에 가자고 재촉하지 않는 엄마가 오늘 좀 이상한지 아리송하면서도 좋은 내색을 비췄다. 서하야, 우리 지금을 써버리자. 순간을 낭비하자. 순간과 순간이 연결되면 삶이 되듯 앉아서 계획만 하느라 뭉갰던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자. 



<오늘로 쓴 카피>

우리, 지금을 써버리자.      


*소재: 캐리어(여행 관련 아이템), 기차 티켓, 여행 패키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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