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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27. 2019

사소한 '처음'을 찾는 일

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당신에게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가게에서 “축하합니다, 고객님! 저희 매장 첫 고객님이세요!”라고 운 좋게 걸린 경험. 돌잔치 같은 행사장에서 “번호표 29번 고객님 어디 계세요?” 하는 행운권 추첨에 뽑힌 경험. 나는 이런 걸 겪어 본 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하지만 생겼다. 며칠 전 난 ‘누군가의 처음’이 되었다. 


얼마 전 ‘오늘로 카피 쓰기’에 싱크대 선반 정리를 했단 이야기를 썼다. 싱크대를 싹 정리하고 위에 늘여놓았던 자질구레한 살림을 다 수납장 안으로 넣었더니 깔끔해지긴 했는데 다른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싱크대 상판. 우리 집 싱크대 상판은 검은색 인조 대리석이다. 별로 좋은 품질의 제품은 아닌지 물기가 마르면서 허연 물 자국이 그대로 보여서 치워도 지저분해 보였다. 몇 해 전 눈에 거슬리던 싱크대 문짝을 교체할 때 인테리어 업자가 내 고민을 듣더니 자기는 그런 이유로 절대 검은색 인조대리석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엔 금전적 부담이 커서 상판 교체는 못했다. 이 집에 이사 온지도 5년, 이번 참에 남편과 나는 큰 맘먹고 싱크대 상판을 바꾸기로 했다. 


업체를 알아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링크를 타고 들어갔더니 OO쇼핑몰이었고 OO스톤이란 업체의 싱크대 상판 교체 상품이 괜찮아 보여 남편과 링크를 공유하고 결제까지 초 스피드로 해버렸다. 난 뭐든 말 나오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아직 등록된 상품 후기가 없어 산뜻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작지 않은 업체니 믿고 맡겨 보기로 했다. 




이틀 후 해당 업체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도 실측을 해야 하니 날짜 때문에 전화했겠지 했는데 뜻밖의 얘기를 했다. “고객님께서 저희 첫 주문 고객이세요!” 어맛! 어쩐지 후기가 없다 했더니 내가 첫 구매 고객이라니. 주로 기업만 상대로 하다가 가정집 서비스는 처음 시작했고 초반에 임직원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보려던 찰나에 내가 결제를 해버린 것. 타이밍도 절묘해 나도 ‘그것 참 허허’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실측하기로 한 날에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 도착했다. 잠시 후 약속 시간이 되자 벨이 울렸고 문을 여니 인상 좋은 여남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현관문을 더 열자 그들은 내게 작지 않은 케이크 상자를 건넸다. 

“저희 첫 구매 고객님이시라 준비했어요.”

시트콤 같은 상황이 뭔가 재미있었다. 태어나 처음 누군가의 ‘처음’이 되어 혜택을 받게 된 나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일단 케이크 상자를 받았다. 주방에 들어가 실측을 하면서도 첫 구매 고객이시라 이것저것 많이 챙겨드리겠다고 하는데 나 또한 처음 받는 호사에 어벙벙했다. 덩달아 나까지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후기를 잘 써볼게요”라고 말해버렸다. 이런 직업병. 


29CM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첫 구매 고객 혹은 페이지 오픈 후 첫 번째 방문자에게 선물을 주는 마케팅 이벤트를 종종 한다. 그런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저런 혜택을 받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 그런 행운이 찾아올 리 없지,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겪어 보니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도 해당사항이 되기도 하네? 뭔가를 하는 데 있어 ‘첫’이란 어떤 의미일까? 처음이란 건 시작을 뜻하는 것이고 우리의 시작과 함께 하게 된 누군가에게 공을 들이고 혜택을 나눠 주는 건 어떻게 보면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그들이 시작하는 사업에 첫 삽을 뜨게 된 고객이라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별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그들이 나를 특별하게 대접해주니 나 또한 남다른 감정으로 이 상황을 맞게 되었다. 평범한 하루 중 사소한 것에서 ‘처음’을 찾아보면 어떨까?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순간순간이 각별해질지 모른다. 



<오늘로 쓴 카피>

가장 맛있는 커피는

오늘 마시는 첫 커피


*소재: 커피, 음식, 텀블러, 머그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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