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쓰지 못한 카피를 씁니다
한 번 낳아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 건 무섭고 두렵다. 임신과 출산의 경험도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아이를 처음 키우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려 아이가 아주 작을 때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가 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하루에 잠을 2-3시간씩 밖에 못 자고 뼈를 깎는 고통에 지치고 힘들다 할지라도.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이는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간다. 너무 빨리 크는 게 야속할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기에서 아이로, 어린이가 되는구나 싶어 신기하다. 이제 5살이라 벌써부터 웬만큼 키워놨구나 싶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손목시계라도 있으면 바닷가 해변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아들의 치아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 아이의 치과 치료 예약이 돼 있었다. 오전 11시, 부랴부랴 치과에 도착해 대기실에 있는데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슬슬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자니 짠한 마음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곧이어 서하의 이름이 불렸고 돌 남짓할 때부터 다닌 치과라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도 서하를 어제 본 아이처럼 반겨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늘 할 치료에 대해 아이가 얼마나 고생할지를 염려하며 측은한 표정도 잊지 않았다. 침대에 눕기 전부터 내 품에서 울음을 터트린 아이는 단단한 그물망에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천장 모니터로 좋아하는 헬로카봇을 틀어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날의 치료는 왼쪽 위 어금니를 2개나 크라운으로 씌우는 과정. 이미 아래 양쪽 어금니를 씌운 상태다.
이는 무조건 유전이라고 한다. 그게 정말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나와 남편의 이가 굉장히 약한 걸 보면 아이의 이가 안 좋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나는 아이의 양치를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원체 이 닦는 걸 싫어해서 치카할 때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남편과 내가 아이를 붙잡고 만화 틀어줄게, 장난감 사줄게 하는 가진 유혹을 일삼으며 매번 양치를 하지만 한번 할 때마다 너무 힘드니 어쩔 땐 그냥 패스하자, 가 되곤 했다. 그럴 땐 주로 아이가 양치를 못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을 땐데 (다른 부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깨워서 시키고 다시 재우나?) 우리는 내일 아침에 하지 뭐, 하며 그냥 재웠다. 그러기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생기면 아주 대충, 하는 시늉만 해서 치카 시간을 끝내곤 했는데 그때 내가 버릇처럼 꼭 하고 넘어가는 말이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뭐”였다.
그렇게 안 하느니만 못한 양치를 하다가 순식간에 아이의 치아가 심각하게 썩은 걸 보았다. 부랴부랴 치과에 갔지만 이미 사태는 심각했다. 어금니는 말할 것도 없이 빨리 썩어서 때우길 일삼고 앞니와 송곳니도 많이 변색되고 마모되었다. 나는 아이의 이가 나오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이 고생을 한 번 더 해도 좋으니 건강하고 깨끗한 치아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때는 결코 안 하는 것보다 나은 양치질이 아니라 제대로 최선을 다해서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늦은 건 아니다. 아이들은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온다. 보통 7살에서 8살 사이에 이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한다. 요즘도 그러곤 있지만 영구치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관리해줄 생각이다. 그러려면 2, 3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이 아이가 자신의 못생긴 치아 때문에 상처 받진 않을지 걱정이 태산 같다. 순간의 귀찮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대충을 일삼던 내 습관이 아이에게 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다. 울고 떼쓰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닦이는 거였는데. 밥을 빨리 삼키지 않는다고 더 다그칠 걸. 사탕 달라고 가진 애교를 다 피워도 꾹 참아볼걸. 모든 게 내 탓 같아 후회만 한 짐이다.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는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을 다독이며 잘했다고 긍정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아이의 치아 관리를 그렇게 엉망으로 했으면서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하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칭찬하며 대강 넘어가고 있었다. 나로선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가 낳은 최악의 결말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이런 생각이 옆구리를 꽤 차고 들어오려 할 때마다 “낫긴 뭐가 나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했어야 했다. 대충에 위안을 삼기보다 완벽에 쾌감을 경험해야 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의 칫솔질에서만이라도. 어쨌거나 오늘 쓴 글이 이제 막 쌀알 같은 이가 나오려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고 나처럼 하지 않는다면 긴 시간 자판 두드린 시간이 아깝지 않으리라. 아이들 칫솔질에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는 없다. 안 하고 넘어가면 안 되고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
<오늘로 쓴 카피>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란 말을
안 하는 게 낫겠지.
*소재: 다이어트, 운동, 식단 조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