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회원가입을 하고 동의를 구하면 발송되는 SNS 알람 중 유일하게 수락한 것이 온라인 서점이다. 그래서인지 하루에도 아, 좀 너무 보내네 싶을 정도로 받으면 3~4개 정도 받는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어쨌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거나 다양한 분야의 출간을 빨리 알 수 있어서 수신 거부하지 않고 있다. 이젠 어떤 온라인 서점에서 보내는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문자 수신번호도 외웠기 때문에 받는 족족 구미가 당긴다 싶으면 어플로 바로 접속해 책을 구입하고 있다.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은 읽은 책이 아니라 앞으로 읽기 위한 책이라고 했던가. 나 또한 읽다만 책이나 시작도 안 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예전에는 읽지 않은 책이 잔뜩 있는데도 책을 또 사는 게 찝찝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택배로 받은 책을 후루룩 넘겨보고 그대로 책장에 꽂을 때도 많다. 언젠가는 그 책의 어떤 구절이 운명처럼 내게 읽히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특유의 말투와 굽슬굽슬한 파마머리가 인상적인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를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했고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었는데, 꽤 인상적인 챕터가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작은 서점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빼곡한 그의 서재를 보고 사람들이 “이 책을 다 읽으셨어요?”라고 물으면 굉장히 난감하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끝까지 다 읽은 책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책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무조건 한 권을 다 읽어야지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나도 이젠 그렇지 않다. 장편소설도 중간까지 읽다가 멈추고(이런 경우는 주로 새로 산 책이 내 손에 쥐어졌을 때다.)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소설로 돌아가곤 하는데, 앞의 내용만 잘 기억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어쨌거나 김정운 교수는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는 이유가 ‘목차와 찾아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면 뭣 때문에 책의 편집자가 그토록 친절한 목차를 만들까? (중략) 목차와 찾아보기는 주체적 독서를 위한 것이다. ‘주체적 책 읽기’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함을 뜻한다.”
<에디톨로지_김정운>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면 (장편소설이 아닌 이상) 목차를 살피고 그중 끌리는 제목부터 순서 상관없이 읽었다. 그래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는 이유가 목차와 찾아보기가 있기 때문이란 문장을 읽고 새삼 이 두 단어에 대해 생각해봤다. 앞서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체적 독서’를 위해 목차가 있는 것이라면 ‘주체적 집안일’을 위해서 목차가 있는 건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골라서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소 생뚱맞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내가 쓰고자 하는 카피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살림의 목차
-집안일의 차례
-즐겨찾기 가사(家事)
이런 카피를 쓸 경우 서브 텍스트를 넣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자기 주도적 집안일을 위한 목차 보기! 지금 꼭 필요한 것부터 골라하기 좋아요’ 이런 식으로. 차례, 목차, 즐겨찾기, 찾아보기 등은 결코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과 어떤 단어가 붙느냐에 따라 느낌과 의미는 달라지며 그것들은 때로 신선하게 조화로울 수 있다.
<에디톨로지>에서 말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를 집안일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왜 집안일이었을까? 내가 주부이기도 하고 어질러진 집을 치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남자거나 싱글 여자일 경우는 또 다른 조합이 나올 수 있겠지. 때로는 팔아야 하는 물건의 주 타깃의 생활 패턴을 감안해서 정하기도 하고) 즉 집안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할 필요는 없다,라고 바꿔 놓고 타이틀을 붙여 보는 것이다. 만일 더 참신하고 남들이 생각지 못한 카피를 쓰고 싶다면 글쓰기나 카피와 관련 없는 책을 자주 접하자. 거기서 힌트를 얻고 내 경험과 여러 상황에 빗대어 아이디어를 발상시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