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니시카와 미와는 좋아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그가 쓴 책도 읽고 만든 영화도 봤지만 영화보단 글에 마음이 쏠린다. <아주 긴 변명>을 소설로 먼저 접하고 영화를 보았다. 둘 다 좋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글이 더 좋아서 그의 책을 더 찾아 읽기로 한 나는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작가의 이름을 쳤다. <어제의 신>이라는 아직 보지 못한 단편집이 떴다. 신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중 아직 읽지 않은 게 있는 것만큼 설레는 것도 없으니까. 냉큼 결제 버튼을 눌러 책을 주문했다. 5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을 정말 정말 아껴 읽은 기억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 아! 이렇게 쓰고 싶어,라고 생각 드는 책이 있기 마련인데, 내게 니시카와 미와의 글이 그렇다. 11명의 한국 소설가에게 듣는 코멘터리, 라는 부재를 단 <작가의 글쓰기>란 책의 가장 뒷부분에 보면 ‘소설을 쓰려는 이들에게’라는 부록 같은 꼭지가 있는데 <사랑이 달리다>를 쓴 소설가 심윤경이 이런 말을 남겼다.
“(문학이 아닌 과학을 전공한 내가) 지금까지 소설 쓰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쓰고 싶다. 그것만 분명하면 된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소설이 많아도 오히려 그것은 나를 분산시키는 필요 없는 정보일 때가 많다. 나는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가?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일이 당신을 소설로 이끌 것이다.”
읽고 싶은 글을 쓰라, 는 말은 읽고 싶은 카피를 쓰라는 말과 같다. 나 또한 카피를 쓸 때 내가 고객이라면 이런 카피 진짜 좋아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서 쓸 때가 많다. 나는 쓰는 사람이면서 사는 사람이니까. 카피라이터이자 소비자다. 자신이 어떤 상품이 필요할 때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잘 기억해 두자. 그런 걸 차곡차곡 모아놨을 때 나만의 카피를 쓸 수 있는 무기가 생긴다. 니시카와 미와의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어제의 신> 중 ‘디어 닥터’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초조함이 가슴속에서 울컥 용솟음치는 동시에, 머리털처럼 가늘고 차가운 바늘에 콕 찔리듯 불안을 느꼈다. 근무시간에 가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은.”
<어제의 신_니시카와 미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에서 카피의 힌트를 얻을 때 문장 자체보단 상황에 집중하길 바란다. 여기서는 ‘근무시간에 가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은’이 동기부여가 된다. 오후 3시, 매출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왔는데 가족 중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즐거운 사람 손? 나는 여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으로 설정하겠다. 왜냐하면 실제로 엄마에게 전화 왔을 때 가장 불안하니까.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요즘에도 가끔 엄마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부재중 전화로 뜨면 그제야 카톡 메시지로 “회의 중인데 왜?”라고 보낸다. 여담이지만 과거 엄마가 문제를 일으켜 그와 관련된 받기 싫은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우리 집을 비롯해 부모가 사고 치는 집은 의외로 많다.) 알게 모르게 그때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회사에서 엄마의 전화받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즐겁고 유쾌한 통화는 거의 없었으니까.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면 엄마가 지금 홈쇼핑에서 방송하는 뭔가를 사달라고 요청하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니시카와 미와는 근무시간에 가족에게 전화가 걸려 오는 걸 날카로운 바늘에 찔리는 것만큼 불안하다고 표현했다. 일하는 시간에 부모에게 걸려 오는 전화가 불안한 이유는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일하는 시간엔 피해가 될까 일부러 전화할 일이 있어도 퇴근 후로 미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간까지 버티지 못하고 지금 전화를 하는 이유는? 무슨 일이 없고서야 이럴 리 없는데...라고 생각 드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감정 느껴보지 않았을까? 휴대폰에 ‘엄마’ 혹은 ‘아빠’라고 뜬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뭔 일 났나? 조마조마해하며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오늘 저녁 먹고 올 거니?”
“...아니, 일찍 갈 거예요.”
문자 메시지로 물어도 될 것을 굳이 왜 전화로, 싶지만 엄마 입장에선 문자보다 전화가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받을까 말까 하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별 것 아닌 일. 그럴 때의 안도감, 아 집에 별일 없구나, 엄마에게 별 일 없구나,라고 안심했을 때 확 당기는 그것! 시원한 아이스커피는 어떨까? 톡 쏘는 탄산음료는 어떨까? 콜라나, 캔커피 같은 음료를 판매할 때도 응용해봄직하다.
휴~ 받고 보니 별거 아니네.
휴~ 알고 보니 별거 아니네.
휴~ 겪어 보니 별거 아니네.
받고, 알고, 겪어를 시리즈로 나눠서 시안을 만들어봐도 좋겠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경험해 보기 전엔 두려운 법. 근무시간 중 가족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막상 받고 나면 별 거 아닌 것처럼 우린 겪어 보기 전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카피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리저리 펜대를 굴려보면 뭐 하나는 걸리기 마련이다. 쓰기 전부터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아 노심초사하지 말자. 문제의 힌트는 우리 주변에 아주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