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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30. 2019

쉬운 말로 빨리 이해되는 '긴 카피'

다르게 쓰고 싶은 온라인 편집숍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회사에서 부서 간 업무 효율을 위해 종종 자리를 옮기는데, 책상의 80%는 책이 차지하고 있는 나로선 그 이사가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거사를 치르는 기분으로 책을 싸고 옮긴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는 정말 책을 좀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으로 추리고 추려서 집으로 택배를 보내거나 주말에 하루 차를 가져와 책을 가져간다. 그럴 때마다 회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책과 한번 봤으니 됐다 싶은 책이 나뉜다. 


다년간의 잦은 이사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에 계속 남아 있는 몇 권의 책 중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거의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필수 권장도서라 불릴 만큼 빠지지 않는 유명한 책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의견에 순응하는 건 아닐 것이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스티븐 킹의 자랑 아닌 자랑이 과한 책이기도 해서... 사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읽었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등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그의 신작 <아웃사이더> 1, 2권을 완독 했다. 종이책 둘 자리가 감당 안 돼서 요즘 가능하면 소설은 전자책으로 읽는 터라 <아웃사이더> 또한 E-BOOK으로 (대여해서) 읽었다. 전자책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1, 2권 모두 엄청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스티븐 킹을 페이지터너라고 하는구나! 


어쨌거나 여기에서 언급하려는 건 <아웃사이더>의 재미나 줄거리에 대한 것이 아닌 ‘엄지 척!’ 하지 않을 수 없는 그의 비유나 타고난 묘사력이다. 나는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전자책에도 밑줄을 많이 긋는데 (전자책은 펜이 없어도 돼서 참 편하다) 이걸 그대로 두면 쓸모없기 때문에 반드시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문서에 옮겨서 파일로 저장해둔다. 일일이 필타로 쓰는 게 아니어서 인상적인 문구들이 직접 쓸 때보다 쉽사리 기억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놔야 안심이 된다.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그 부분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단순한 단어로 이해하기 쉽게 썼다. 어쩜 이렇게 무심하게 툭툭 던지듯 쉽게 쓰시는지.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과 말 자체를 어렵게 하는 건 다르다. 스티븐 킹은 소설의 배경에 필요한 현상이나 특정 직업군에 대한 지식에 전문용어로 해박함은 채우고 쉬운 낱말들로 독자의 판단과 이해를 도왔다. 


‘평발’이라는 말을 두고 ‘편평족’이라고 쓰지는 않겠다고,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똥을 누었다’ 대신에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생리 현상을 해결했다’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유혹하는 글쓰기_스티븐 킹>


카피를 쓴다고 해서 모든 문장을 간단명료하게만 표현하진 않는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조금 더 일상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형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나 비유를 끄집어내곤 한다. 의미를 함축한 어려운 단어로 심플하게 적는 카피보다 쉬운 말로 빠른 이해를 돕는 몇 줄의 카피가 판매에는 도움이 된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 작년보다 빠른 추석으로 요즘 한창 추석 기획전 제작이 진행 중이다. 크고 작은 추석 관련 이벤트를 준비하며 카피 작업을 했는데, 그중 그릇에 관한 기획전이 있었다. 보통 엠디가 기획안을 1차로 작성하면 내가 수정 및 검수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카피를 수정한 경우다. 


사실 이벤트의 상당 부분이 시즌을 맞아 새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유를 만들어 상품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 그릇 이벤트의 경우도 우리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그릇 세트와 잔을 열거한 뒤 추석이란 명분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내가 겪은 명절을 떠올려 보면 주방 곳곳에 숨겨둔 그릇을 거의 다 꺼내다시피 할 때가 설, 추석 같은 명절인데 그릇을 아무리 많이 꺼내놔도 하나로 보인다면 더 차분하고 정갈해 보이는 상차림이 될 것 같았다. 처음 엠디가 작성한 멘트는 내가 쓴 것과 조금 달랐지만 수정 과정에서 방향을 이렇게 잡았다. 


가짓수가 많아도 정갈한 그릇과 잔 

친인척이 모이는 명절에는 많은 그릇이 필요하죠? 

여러 개를 꺼내 놓아도 하나처럼 보이는 깔끔하고 단정한 그릇과 잔을 소개합니다. (링크)


최대한 경험에 빗대어 쉬운 말로 상황을 설명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사게 할 명분, 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때 가능하면 짧은 한두 줄에서라도 다른 곳에선 보지 못했던 문장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다. 그러면 반드시 풍성한 카피가 된다. 난해하고 복잡한 말로 풍성하게 만들란 소리가 아니다. 


<아웃사이더>를 읽으며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은 대부분 이런 문장이었다. 


“딸들은 예쁘장한 북엔드처럼 아내의 양옆에 앉아 있었다.”

“위장이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목이 바짝 말라서 뭐라고 얘길 꺼내면 쉰 소리가 나올 듯”

“모든 수업 시간에 맨 뒷자리를 고집했고, 한 번도 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이면 교복 아래에 체육복을 입고 등교할 정도로 소심했다.”

“그의 상당한 무게에 눌린 스프링이 악을 쓰며 투덜거렸다.”

“열기가 망치처럼 그들을 덮쳤다.”

“홀리가 마주 고함을 지르자 달걀 껍데기 같은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이런 문장들은 읽자마자 머릿속으로 그림으로 그려지며 피부로 느낌이 전달된다. 우린 이런 글을 읽고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할 것이다. 이토록 쉬우면서도 잘 이해되게끔 멋진 비유를 늘려가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은 비유가 술술 나올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건 소설을 많이 읽고 대가들의 표현법을 적어도 보고 외워도 보며 그와 유사하게 새로운 비유를 만드는 연습을 자주 하는 정도다. 


이런 표현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 없다. 가능하면 내가 실제로 느낀 감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지나치지 말고 계속 메모해 놓고 이런 느낌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어떻게 써주면 좋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내 경험치를 최대한 끄집어내는 수밖에 없다. 스티븐 킹 또한 자신이 체험한 것을 상기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문장을 만들지 않았겠나?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글쓰기 책에 이런 비유법에 관한 꼭지는 반드시 포함돼 있다. 그런 비법서를 읽고 아, 작가는 역시 대단해하는 것과 지금 당장 무릎을 탁 치게 된 순간의 감정을 달리 표현해 보면서 적극적으로 나만의 무기를 늘려가 수첩에 한 줄씩 적어 넣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부디 소설을 더 많이 자주 읽으면서 이런 비유법, 묘사력에 대한 연습을 꾸준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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