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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16. 2016

잘 산다는 것

책 읽다말고 딴 생각하기

그런 것은 진짜 부자의 감각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부자라면, 멋진 고안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오래된 옷걸이를 1, 2개 가지고 있다, 내가 감탄해 하며 요리조리 살피고 있으면, “그거 런던에서 특별히 제작된 건데, 너무 잘 만들어져서 모두들 갖고 싶어하더라고. 그래서 하나 둘 나눠주다 보니 이제 두 개밖에 안 남았네. 하지만 갖고 싶다면 줄게. 머잖아 시중에 나올지도 모르지만, 사양하지 말고 가져다 써”라고 하는 것이 부자, 풍요로운 사람이 할 대사였다.  <다나베 세이코의 ‘아주 사적인 시간’을 읽다가>



    옷걸이는 세탁소에만 있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그건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집 어딘가에 굴러다녔고 엄마가 세탁소에 옷을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때마다 하나 둘 늘어나는 물건이었다. 가끔 수명을 다한 옷걸이는 곧게 펴서 막힌 수채 구멍을 뚫기도 하고 재수없으면 엄마의 손에 들려 회초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나는 ‘아주 사적인 시간’의 이 부분을 읽으며 옷걸이 따위 잘 만들어봤자지,라고 생각했다. 때 되면 버리고 옷만 제대로 걸리면 그만. 하지만 직접 살림을 시작하고부터 옷걸이도 제대로 된 걸 써야 된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옷이 자꾸 떨어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옷걸이는 걸린 옷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좁이’가 된다. 그러다 보면 옷장에서 옷을 꺼낼 때마다 툭툭 빠져서 나는 그걸 또다시 주워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반복된다. 결국 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옷걸이는 ‘사야 되는 거’였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나는 돈을 주고 옷걸이를 사는 게 영 마땅치 않았다. 소설에 적힌 대로라면 나는 부자 마인드 되긴 틀린 것이다. 우리 집 베란다 커다란 쇼핑백에는 아직도 쓰고 남은 세탁소 옷걸이가 잔뜩인데 뭐하러 돈 주고 옷걸이를 사?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걸 사지. 옷을 빼고 걸 때마다 견고하지 못한 옷걸이에 대고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다가도 막상 돈 주고 옷걸이 산다는 것엔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비단 옷걸이뿐이 아니다. 나는 내가 부자 마인드를 갖긴 글렀구나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사소한 물건을 비싼 돈 주고 사는 사람을 볼 때다. 가령 비누를 좀 좋은 걸 쓴다거나 그릇 같은 것도 디자인보다 재질이라 브랜드가 우선인. 그러니까 그런 소모품은 보기에 예쁘면 됐지 무슨 소재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수건도 그렇다. 주기적으로 수건을 바꿔 쓴다거나 애초에 좋은 퀄리티의 수건을 쓴다는 건 나와 거리가 멀었다. 수건은 마트에서 열 장 세트에 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을 주고 사, 빨면 다 똑같아 라고 짠돌이 소비 성향을 합리화시키기 일쑤였다.

illust by 곽명주


    합리적인 소비는 질이 좀 나빠도 싼 걸 많이 사는 게 아니라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서 오래도록 버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말로는 쉬워도 옷으로 덮어버리면 보이지도 않을 옷걸이를 몇 만원씩 주고 사기엔 내 지갑이 역시나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그런 나의 소비 패턴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얼마 전 그릇 세제와 핸드워시를 새로 구입했는데 평소 같으면 마트에서 만원 안팎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샀을 테지만 이번에는 성분을 따져보고 가격을 떠나 믿고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인지, 내 몸엔 괜찮은 건지 일일이 따져보고 샀다. 그렇게 고른 세제가 평소 사던 것의 두 배 가격이었지만 과감히 결제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좋은 제품을 오래 쓰기 위해서다. 사실 세제를 비싼 거 쓰다 보니 낭비가 줄었다. 핸드워시도 한번 손 씻을 때마다 두세 번 짰는데 이제 딱 한 번만 짜게 되더라. 그것도 살짝.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손을 씻는 데는 충분했다. 설거지할 때도 무조건 거품이 많은 게 좋아서 여러 번 펌핑했는데 이젠 적당히 짜서 간단히 헹궈내게 됐다. 덕분에 물 절약도 됐다.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듣는데 '친구가 이런 말할 때 진짜 얄밉다' 라는 주제로 청취자들에게 사연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원에 3장짜리 티셔츠를 사고는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이거 3장에 만원 주고 샀어, 싸게 잘 샀지?’라고 했더니 ‘응, 싸 보인다.’라고 했다는. 뭔가 맞는 말인 듯하지만 분명 친구가 자신을 디스 한 게 아니냐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물론 나도 몇 장에 얼마, 이런 거 자주 사는 쪽이다.  딱히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싸게 잘 샀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그건 싸 보이는 물건에 불과했고 딱 그만큼밖에 쓰지 못했다. 질 좋은 물건을 제 가격에 주고 사서 오래도록 쓰는 것. 그게 진짜 소비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산 물건이 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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