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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09. 2016

관리의 부지런함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명품 가방으로도 보석 반지로도 가릴 수 없는 게 손이니까. 그래서였을까? 내 발로 들어온 가게인데도 앉은 내내 죄지은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동시에 그건 설렘과 호기심의 박동이기도 했다.
“어떤 거 하실 거예요?”
나는 매니큐어를 하겠다고 했다.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살피더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케어를 먼저 받으라고 했다.
“케어요?”
여자가 판에 박힌 말투로 대사를 외듯 설명했다. 케어란 손톱 주위에 큐티클과 각질을 정리하고, 영양제를 바르는 걸 말했다. ‘베이직’이라는 메뉴가 바로 이 과정을 뜻했다. 원하면 마사지나 팩을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얘길 들어보니 케어 없이 매니큐어를 한다는 건 샴푸도 안 하고 린스를 바르겠다는 말과 같은 거였다.
 
<김애란 ‘비행운’을 읽다가>




    책의 양 날개를 팔로 눌러 가며 책을 읽는 사이 오른쪽 엄지손톱을 왼쪽 엄지손톱으로 계속 긁어냈다. 2주 전에 한 젤 매니큐어를 뜯어내고 거스름이 남았는지 까끌까끌 한 게 계속 손이 갔다. 단단하게 굳어 긁히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젤 매니큐어는 좀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바른 후 2주쯤이 지나면 매니큐어와 손톱 사이에 미세한 공간이 생기면서 들뜨기 시작하는데 그걸 못 참고 나는 꼭 손으로 떼어낸다. 또 하나의 손톱이 되어버린 젤 매니큐어를 떼어낼 때의 쾌감 때문에 종잇장처럼 약한 손톱에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뜯어 내고 난 뒤 지금처럼 손톱의 얇은 겉 표면이 뜯겨 거칠어진다. 샵에 가서 네일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약품으로 녹이거나 긁어내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젤 매니큐어를 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늘 일반 매니큐어로 받다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손에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게 된 날, 과감히 전과 다른 투자를 했다. 과감한 투자라고 했지만 사실 일반 매니큐어는 버티지 못할 만큼 집안일이 많아 젤 네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집안일의 차이는 거의 5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일반 매니큐어라면 3일 이상은 버텨내지 못할 일의 양이다.


    20대 초반부터 바르기 시작한 매니큐어. 그때만 해도 네일숍에 가지 않고 직접 바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내 방에는 기본 컬러는 물론 흔히 보기 힘든 컬러와 펄이 들어간 것부터 아주 작은 비즈가 들어간 것까지 다양한 매니큐어가 즐비했는데 당시만 해도 샵 부럽지 않은 제품 보유로 언니와 엄마에게 한심하다는 눈빛과 더불어 잔소리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주로 다음 날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매니큐어를 새로 발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정류장 앞 ‘더 페이스샵’이나 ‘스킨푸드’에 들러 이천 원, 삼천 원짜리 매니큐어를 사는 일 또한 작은 소비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뭐든 하면 는다고 이것도 자주 바르다 보니 요령이 생겨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일숍에서 관리받은 건지 직접 바른 건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셀프로 할 수 있는 제품도 다양해서 손톱 옆에 바르는 오일은 불론 매니큐어를 바르기 전에 바르는 베이스나 컬러링을 하고 나서 바르는 탑코트, 그리고 큐티클 제거제까지 꽤 다양한 방법으로 손톱을 관리할 수 있었다. 내 손톱에 대한 관심은 내가 제일 컸기 때문에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컬러가 바뀐 손톱을 알아봐주기라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illust by 곽명주


    하지만 이 모든 제품 앞에 ‘부지런함’이 없다면 소용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네일 받는 사람을 게으른 사람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다. 자기 손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는 모습이야 말로 어른들이 보면 기함할 노릇이니까. 또 그렇게 작은 신체 일부에 뭔가를 치장한다는 게 잘 용납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네일을 관리하는 여자들이 보기에 관리받지 않는 사람들이야 말로 게으른 사람에 속한다. 실로 이 작업은 근면이 필요하다. 직접 바르건 샵에 가서 관리를 받건 지속적으로 뭔가를 챙겨한다는 건 바지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샵에 가서 손만 내밀고 있는 게 무슨 부지런함이 필요한 거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예약을 하고 샵에 일부러 찾아가고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양손을 내민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이 적게 수고스러운 건 아니다. 손을 맡겨놓고 잘 수도 없는 노릇. 네일 아티스트와 가끔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 다곤 하지만 퇴근하고 들르는 네일숍에서 수다를 떨어봐야 얼마나 떨겠는가. 개인적으로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 끝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


    여름에는 손 말고도 발까지 관리해야 한다(참 여자들 피곤하다). 매일같이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는 샌들을 신는데 밋밋하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발가락은 감추고 싶어 진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발톱이야말로 게으름의 원상지 같아 보였다. 여름이 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발가락 패디큐어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여자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친구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여자들은 할 게 너무 많다고. 앞서 말한 손, 발 관리는 물론이요 여름이면 제모도 해야 한다. 겨드랑이는 물론 다리와 팔까지. 노출하는 모든 부위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뿐만 아니라 발뒤꿈치 각질도 관리해야 하고 몇 달에 한 번씩 헤어 케어도 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요즘은 주기적으로 속눈썹까지 붙이는 여자들도 많다. 잘 모르는 이들은 그녀들의 그 모습이 모두 원래 그런 줄 알겠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결혼하고 애 낳은 뒤 이런 생각이 한 열 배쯤 절실해졌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어떻게 보든 말든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가 않다(이래서 아줌마가 된다는 건가). 아이 낳고 키우면서도 손 관리 철저히 하는 사람들, 뭐라고 할 게 아니다. 그건 그 사람이 엄청 부지런하고 철저한 거다. 내가 살아보니 알겠다. 때로는 애 엄마가 저렇게 손에 돈을 쓴다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지만 그거 순전히 시기 질투다.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꼭 돈이 많아서 관리받는 게 아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스스로 케어할 수 있게 수많은 제품이 이미 즐비하다. 부지런하다면 적은 돈으로 얼마든지 예뻐질 수 있는 세상이다. 포기하지 말자. 작은 것이라도 놔버리기 시작하면 끝을 감당하기 힘들다. 우린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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