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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23. 2016

한낮인데 어두운 방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한낮인데도 전구를 켜지 않으면 안 되는 축축한 방 가득히 되살아났습니다.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을 읽다가>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을 약 2년가량 했을 때 나는 집으로부터 독립을 결심하게 된다. 뭔가 비장한 마음이 있었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당시 우리 집에는 언니네 식구, 그러니까 형부 언니, 조카와 친정엄마와 나, 이렇게 다섯이 함께 살았다. 무리를 해서 함께 살게 된 이유는 맞벌이하는 언니 부부를 위해 엄마가 조카를 대신 봐줘야 했기 때문. 조카가 어릴 때는 상관없었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자신의 방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겸사겸사 회사도 좀 멀다 싶었던 내가 집을 나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설렜다. 학창 시절 기숙사 생활 같은 것도 안 해본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거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점심시간마다 짬을 내 회사 근처 부동산을 돌며 집을 보러 다녔다. 미안한 마음에 언니가 좀 보태주기로 했지만 내가 워낙 모아놓은 돈이 없다 보니 그 당시 돈 이천오백만 원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월세 살 형편은 안될 것 같아 어떻게든 전세로 찾아보려 옥탑방까지 뒤졌으나 옥탑방도 3천만 원은 가져야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독립은 무산이 되는가 싶을 때쯤 우연히 회사에서 3분 거리에 딱 내가 찾는 가격대의 전셋집이 나온 걸 발견했고 업무 중 미리 전화해 점심시간에 집을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은 회사 건물 바로 뒤에 위치했고 부동산 사장님도 매일 오며 가며 마주치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화창한 6월의 점심시간. 부동산 아저씨를 앞세워 언덕을 올라 집을 보러 갔다.
“총각 혼자 5년을 살던 집이에요. 집주인이 지방에 살아서 전세 가격도 한 번도 안 올렸는데 이번에 총각이 이사 가면서 오백 올려 내놓은 거예요.”
제법 가파른 언덕을 낑낑거리며 오르는 동안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부동산 사장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정보를 일러주셨다.
“여기예요.”
복잡한 골목을 거슬러 올라 계단 몇 개를 더 오르니 곧 부서질 듯한 철문이 나왔고 두려운 마음으로 손잡이를 돌렸을 때 내 앞에는 ‘한낮인데 어두운 방’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가 현관 쪽에선 1층인데 안방 쪽에선 반 지하예요. 그래서 좀 싸.”
그러니까 집이 어떻게 됐다는 거지, 아무튼 집은 굉장히 어두웠고 나는 손을 더듬어 불을 켰다.
‘그래. 낮에는 거의 회사에 있을 테고 밤이나 돼야 집에 돌아오는데 햇빛 좀 안 들면 어때’
그런 단순한 생각과 독립의 꿈을 접을 수 없다는 욕망으로 그 집을 덜컥 계약해 버렸다.

    남자 혼자 5년을 살았던 반지하 전세방은 상상 이상으로 더러웠다. 집주인과 합의해 도배장판을 새로 했고 나름 여자가 살집이니까 싱크대 시트지도 새로 붙이고 욕실 거울도 새로 꾸며 제법 사람 사는 집처럼 만드는데 3개월이 걸렸다. 그렇다고 해도 행복했다. 혼자 사는 집에 대한 로망,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본격적으로 ‘나 혼자 산다’가 시작됐고… 나는 시나브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시든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사람에게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illust by 곽명주


    어느 날은 팔뚝과 다리에 낯선 반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어디가 고장 난 건가? 싶은 찰나 엄마가 반찬을 가져다주겠다며 들르셨고 내 몸에 생긴 수상한 반점을 보고 광합성을 못해서 생긴 거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당시 나는 사귀는 사람이 없어 주말이고 평일이고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니까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이 뭐 그리 많겠나 싶었지만 매일 집에만 있는 집순이였던 거다. 그 집은 희한해서(사실 어두워서) 계속 잠이 왔다.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늘 저녁 7시 같았다.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여자 혼자 살면서 현관문을 대놓고 열어 놓을 순 없었다. 그 당시 하필 서울대 근처 날다람쥐라고 여자 혼자 사는 집만 찾아다니는 성폭력범도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참이었다. 안방 창문을 열면 옆집의 거대한 벽돌 벽이 마치 나를 짓누르듯 무섭게 서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놀러와 밤새 수다를 떨다가 하룻밤 자고 간 적이 있었는데 아침 11시가 되어도 깜깜한 방을 보며 “여기 뭐야?”라고 두려운 듯 말해 살짝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집에서는 딱 1년을 살고 이사했다. 물론 어두운 방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몸이 많이 아팠고 다른 계기도 있었다. 사람에게 빛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때 이후 집 고를 때 첫 번째 기준은 ‘빛이 얼마나 잘 드는가’다. 결혼하고 첫 번째 신혼집은 넉넉지 못한 살림에 원룸 오피스텔을 얻어야 했는데 그 오피스텔은 햇빛이 얼마나 잘 드는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 창으로 비추는 햇빛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박쥐’의 마지막 장면, 송강호와 김옥빈이 바닷가 낭떠러지에서 이글거리는 햇빛에 타 죽는 장면이 연상될 만큼 뜨거웠다. 그 집은 또 너무 뜨거워서 딱 1년 살고 이사했다. 이건 뭐 중간이 없다. 아무튼 인간에게 빛은 소중하다.

(제목은 에쿠니 가오리 소설 ‘한낮인데 어두운 방’ 동일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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